
벤과 물통
자폐 아들의 목숨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절박한 호소가 통했다. 영국 잉글랜드 데번주에 사는 마크 카터(42)는 지난달 14일 트위터에 “작은 파란 물통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물통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토미 티피’라는 브랜드의 유아용 물통으로, 자폐증을 심하게 앓는 아들 벤(14)이 2살 때부터 이 물통으로만 물을 먹는다고 카터는 말했다. 하지만 토미 티피에서는 이 물통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으면서 카터의 물통 구하기가 시작됐다.
카터는 “벤이 2세 때부터 이 물통으로만 물을 마셨다. 아무리 다른 물통이나 컵을 사용하게 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아들은 이 물통에만 집착한다”고 말했다. 심한 자폐증 때문에 벤은 이해력이 낮고 의사소통도 거의 안 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아버지 카터
카터는 “벤이 집 밖에선 물을 아예 마시지 않고 집 안에서 반드시 이 물통으로만 물을 마신다”며 “이 작은 컵이 우리 가족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물통이 아니더라도 벤이 갈증이 나면 결국 물을 마시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물통이 없을 때 벤이 아무 것도 마시지 않아 탈수증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죽을뻔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벤
물통 사진을 올린 카터는 “지금 사용하는 물통도 3년째 써와 손잡이가 떨어질 지경” 이라며 “혹시 이렇게 생긴 물통이 집에 있다면 우리 가족에게 보내줄 수 없느냐. 꼭 보상하겠다”고 호소했다. “이 물통은 우리 아들의 생명줄”이라고도 했다.
카터의 절절한 호소는 트위터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1만9000건 이상 리트윗됐고 외국에서도 성원이 답지했다. 호주에 사는 한 남성은 “내 물통을 보내주겠다”는 글을 남겼고 또 다른 남성은 “3D 프린터로 벤의 물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트위터 캡쳐
며칠 뒤 토미 티피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회사 측은 “단종된 모델이지만 전 세계 공장을 뒤진 끝에 중국 공장에서 벤의 물통 주형을 찾아냈다”며 “500개를 생산해 무료로 주겠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번 주 중국 공장에서 물통을 생산해 새해에 카터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카터는 “복권에 당첨돼도 지금만큼 기쁘진 않을 것 같다”며 “아들이 같은 물통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겐 마음의 평화를 준다”고 트위터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