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겉으론 질서있는 퇴진…개헌 고리로 탄핵연대 흔드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순실 국정 농단 대통령 3차 담화에 담긴 뜻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담화 뒤 일부 기자의 질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리겠다”며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떠났다. [사진 김성룡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담화 뒤 일부 기자의 질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리겠다”며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떠났다. [사진 김성룡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 내 탄핵세력의 허를 찔렀다. 지난 4일 제2차 대국민담화 이후 25일 만에 방송카메라 앞에 나선 박 대통령이 이날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며 소위 ‘질서 있는 퇴진론’을 수용하자 정치권에선 극과 극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진석 “하야까지 결심한 항복선언”
대통령, 개헌 통한 임기 단축 염두
서청원 “거국내각·개헌” 맞장구

야권에선 “탄핵을 모면하려는 꼼수이자 새누리당을 향한 탄핵교란 작전 지시”(정의당 심상정 대표)라고 비판하고 있고, 새누리당에선 “하야까지 결심한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항복선언”(정진석 원내대표)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진정성을 부각했다.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면서다. 그런 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선언했다. 이에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광장의 함성과 퇴진 요구에 대통령이 답을 주신 것”이라며 “거취를 국회에 백지위임한 사실상의 하야”라고 주장했다. 이정현 대표도 “대통령이 모두 국회에 맡겼으니 이제 국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박 대통령의 선택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청와대 인사들은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청와대 인사는 “탄핵 대통령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것보다 질서 있는 퇴진이 그나마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과 새누리당 비주류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질서 있는 퇴진론’을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고도의 노림수가 담긴 정치적 담화라고 본다. 이날 박 대통령은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 중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발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물러날 수 있는 법 절차는 탄핵 외에는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이 전부”라며 “대통령은 ‘내 임기를 줄이려면 개헌을 통해 줄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제안에 ‘개헌’이란 표현은 빠졌지만 질서 있는 퇴진은 결국 개헌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며 “친문재인 진영을 제외한 야당 내 개헌론자들은 대통령의 제안을 무작정 걷어차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 비박계 재선 의원도 “개헌을 고리로 야 3당과 여당 비주류의 ‘탄핵 연대’를 흔들고, 개헌 대 호헌의 대결로 정치권을 재편해 혼란을 일으키려는 시도”라고 혹평했다.

탄핵추진론자들은 담화 발표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총에서 보여준 친박계 인사들의 태도에도 주목했다. 이들의 행동과 발언을 보면 왜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수용했는지를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진행돼 온 탄핵 논의는 상황 변화가 생긴 만큼 원점에서 다시 (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의총이 비공개로 전환되자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은 ▶야권의 거국내각 총리 추천 ▶개헌 논의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관련 기사

이어 친박계 초선 의원들이 앞다퉈 “탄핵 문제로 쪼개지지 말자” “개헌으로 힘을 모으자”고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탄핵 원점 재검토’와 ‘거국중립내각 총리 선출’ ‘개헌 동참’의 구호는 야당 지도부나 차기 대선주자들이 이미 거부했던 주제들이다. 익명을 원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탄핵 협상을 길게 끌면서 정치적 반전을 노리려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글=서승욱·채윤경 기자 sswoo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