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수선한 시절, 퇴계의 진리를 되새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퇴계 선생 위패를 모신 쇼교지 경신당에서 다케하라 치묘 주지가 축사했다. [사진 국제퇴계학회]

퇴계 선생 위패를 모신 쇼교지 경신당에서 다케하라 치묘 주지가 축사했다. [사진 국제퇴계학회]

이 어지럽고 황망한 때에 우리 마음을 그윽하게 이끌어줄 한 말씀은 없는가. 지난 26~27일 일본 후쿠오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6차 퇴계학(退溪學) 국제학술회의는 정치 격변의 시절에 ‘왜 다시 퇴계인가’를 묻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은 “현대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을 생각하면 이 시대가 요청은 하면서도 찾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그 마음의 근원에 관해 500여 년 전 퇴계가 밝힌 진리는 지금 더 절실하다”고 개회의 뜻을 전했다. 주최 측인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캐나다에서 모인 학자와 회원 150여 명은 퇴계 이황(1501~70)이 걸어간 인간의 근원적 혁명의 길을 어떻게 21세기형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28편 논문 발표와 토론으로 따졌다.

일본서 퇴계학 국제학술회의
한·중·일·캐나다서 모인 150여 명
선생이 닦은 ‘경(敬) 사상’ 열띤 토론

기조 발표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우리 삶의 도덕적 의미를 제어하는 방도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한 정치문화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제안해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지속 불가능하고, 소비와 충동적인 욕망에 내몰린 단말마적 시각에 머물러 있어서 공동의 미래를 열어갈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 신유학(新儒學)의 전통, 특히 퇴계가 주창한 경(敬)의 회복으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주자(朱子)와 퇴계와 다산(茶山) 정약용의 철학을 비교한 돈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대학 교수는 “세 학자 모두는 진정으로 인간답다는 것은 우리 동료인 타인들과 타당하게 상호작용하고 타인의 이익을 나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갈파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의 방법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베이커 교수는 “우리가 세 분이 제공하는 마음공부의 조언에 귀 기울인다면 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밖에 곽정례 경희대·김언종 고려대 교수의 ‘조선 유학의 일본 전파 경로에 관한 재론’, 양일모 서울대 교수의 ‘계몽기 한국 잡지의 퇴계 담론과 일본의 지식인’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퇴계학 국제학술회의 개최 40주년을 기념해 ‘이퇴계 선생 현창비(顯彰碑)’, 위패를 모신 서원 ‘경신당(敬信堂)’이 서있는 쇼교지(正行寺)를 답사했다. 다케하라 치묘(竹原智明) 주지는 “‘경(敬)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는 퇴계 선생의 정신을 받들며 살아가고 있다”고 인사했다. ‘이퇴계 선생에게 배우는 모임’이 활성화된 일본인의 퇴계 선생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후쿠오카(일본)=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