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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논란 거센 국정 역사교과서 밀어붙일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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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교육부가 어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과 집필진을 공개했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다음달 23일까지 국민 의견을 듣고 현장에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는 “철회는 없다”는 입장이어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지난해 10월 국정화를 강행할 때 우려를 표명하면서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좌편향과 자학사관이 들어 있는 현행 검정교과서가 꼼짝 못하도록 당대의 명망가를 필진으로 구성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최고의 콘텐트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검토본을 보니 상·고대사가 보강되고 근·현대사의 기술도 개선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와 친일파 행적이 명시되고,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해전은 북한 도발이었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절차와 내용 면에선 국민의 신뢰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깜깜이’였던 31명의 집필진 중 절반이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개인 인맥으로 얽혀 있고, 현대사 를 쓴 6명 중에는 정통 역사학자가 없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특히 건국절 논란은 최대 쟁점이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표현대로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정희 정부의 과(過)보다 경제성과 공(功)을 과도하게 쓴 것도 논란거리다. 당장 야당과 역사학계·교육감·시민단체·교원단체들은 “박정희 치적을 강조하는 박근혜 교과서를 폐기하라”며 반발했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해묵은 정쟁이 아니라 사실(史實)에 근거한 고품격·고품질의 교과서다. 따라서 논란이 거센 국정교과서를 내년 3월에 전국 중·고교 6000곳에 밀어넣을 명분이 없다. 국민에게 검증을 받으면서 현장 적용 시기를 유예하거나 국·검정을 혼용해 학교에 선택권을 돌려주는 방안, 문제가 여전한 검정교과서 개선 등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이준식 장관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서둘러 후속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