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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올해의 '핫'한 독립영화들! 제 42회 서울독립영화제 미리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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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계의 성대한 연말 파티. 12월 1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는 이렇게 불릴 만한 영화제다. 한 해 동안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등 굵직한 영화제에서 소개된 다양한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독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상영작도 많다. 올해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자리. 올해 서독제의 출품작 수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39편에 달했고, 이 중에서 엄선한 장·단편 총 114편을 상영한다. 그중 프리미어 상영작은 30편이다. 상영관 규모도 역대 서독제 사상 가장 크다.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점 3개관,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까지 총 5개관에서 열린다. magazine M이 올해 서독제 상영작 중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 열 편을 꼽아 봤다. 소문이 자자했던 화제작을 확인할 좋은 기회이니 놓치지 마시길. 장편 ‘분장’과 ‘꿈의 제인’, 단편 애니메이션 ‘무저갱’을 각각 연출한 남연우·조현훈·김지현 감독과의 인터뷰도 전한다.

성 소수자를 이해한다고 믿는 당신에게 추천!
영화 `분장` 스틸컷

영화 `분장` 스틸컷

‘분장’│남연우│극영화│새로운선택

무명 배우 송준(남연우)은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연극 ‘다크라이프’에 캐스팅된다. 스스로 ‘성(性) 소수자를 이해하며 진정성을 갖고 연기한다’고 믿었던 그는, 연극 무대에 오른 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커밍아웃하자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감독 겸 배우 남연우가 연출·각본·주연을 맡은 ‘분장’은 분장 아래 민낯, 이해 뒤의 오해에 대한 영화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되어 호평받았고, 2016 서울프라이드영화제(이하 프라이드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인 핑크머니상을 수상했다. 남 감독은 “‘성 소수자’를 다루며 조금이라도 폭력적 부분이 있을까 봐 많이 고민했는데, 프라이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아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거나 특정한 곳에 찾아가야 성 소수자를 만날 수 있다고 믿었을 때의 송준에게는 그들을 ‘이해한다’는 말이 쉬웠다. 남 감독은 ‘분장’이 “성 소수자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말한다. “연출자로서의 역할과 배우로서의 역할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고백이 무색할 만큼, 남 감독은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송준의 심리를 균형 있는 연기와 연출로 담아냈다. “수많은 인터뷰와 관찰, 성 소수자 친구들의 반복된 모니터”로, 혹시라도 한쪽으로 치우친 묘사가 없는지 예민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지만 ‘분장’ 후의 내가 좀 더 좋아졌다”는 남 감독의 자신감을 만나 보자.

인간관계의 본질을 알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
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꿈의 제인’│조현훈│극영화│장편경쟁

가출 청소년 소현(이민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가족처럼 오빠 정호(이학주)를 찾아다니던 소현이 트렌스젠더 제인(구교환)을 만나, 그가 꾸리는 따뜻한 ‘팸(가출 청소년들의 공동체)’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제인이 아닌 불안하고 폭력적인 남성 병욱(이석현)의 팸에서 소현이 냉대와 질시를 받고,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는 이야기다. 두 부분은 꿈과 현실처럼 섞여 있다. 조현훈 감독은 “둘의 간극이 클수록 소현이 애타게 바라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망이 선명히 드러날 것”이라 말했다. 결국 관객은 소현을 보며,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의 삶에 한층 더 다가서게 된다. ‘내 얘기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의 이야기로 장편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조 감독은 “평소 관심 있게 지켜봤던 가출 청소년과 트랜스젠더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를 꿈꿨다”고 했다. 그건 사회적 약자들의 새로운 연대일 테다.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염두에 둔 건 “이들의 삶을 대상화해 전시하지 않는 것” “그보단 소현과 주변 아이들이 진심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게 조 감독의 말이다. 소현의 애처로운 모습은, 인간관계 앞에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트랜스젠더 제인을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게 연기한 구교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강렬한 이미지에 빠지고픈 당신에게 추천!
영화 `무저갱` 스틸컷

영화 `무저갱` 스틸컷

‘무저갱’│김지현│애니메이션│단편경쟁

“‘인어’라는 존재가 실재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어느 날 문득 김지현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무저갱’을 탄생시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사랑스러운 인어가 아니라면,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이 존재를 다룰까”라는 질문에서 태어난 ‘무저갱’의 인어는, 문어의 다리를 가졌고 인간의 언어를 모른다. 젊은 어부 훈은 우연히 낚은 인어를 거대한 수족관에 가둬 두고 관찰하다, 인어에게서 기이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문장이나 단어가 아닌 외마디 비명, 신음, 숨소리,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 면과 색만으로 화면에 몰입하게 하는 강렬한 힘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김 감독은 “음악이나 어떤 타이밍에 맞춰 움직이는 이미지들의 율동감만으로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힘”이라 말했다. 제40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49회 시체스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았으며, 지난 9월 열린 제10회 대단한단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단편과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기 어려운 장르인 것이 사실. 김 감독은 “영화제가 아니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꼭 서독제에 많은 관객이 와서 관람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슬프거나 미치거나 추천작7
1. ‘천에오십반지하’│강민지│단편 다큐멘터리│새로운선택
졸업을 7개월 앞둔 대학생 강민지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대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서울에 계속 살며 취업 준비하려면, 아르바이트해 번 돈 50만원에서 생활비 30만원을 제하고 남는 20만원으로 월셋집을 구해야만 한다. 당연히 그런 집이 있을 리 만무하다. 처음에는 웃으며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던 그는 점차 ‘자신을 위한 방 한 칸이 없다’는 생각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측의 말이 달라져 당장 집 밖으로 나앉게 되거나, 시험 삼아 나흘간 지내기로 한 고시원에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이틀 만에 나오는 식의 악전고투가 이어진다. ‘보증금 얼마에 월세 얼마’로 값이 매겨지는 삶에 내던져진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일단 웃고 떠들고 친구들을 만나며 오늘을 견디는 청춘의 모습이 반짝인다. 하지만 방이 작아지면서 꿈도 작아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2. ‘여름밤’│이지원│극영화│단편경쟁
대학 졸업반에 취업 준비 중인 소영(한우연)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고등학생 민정(정다은)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한다. 민정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소영은 민정의 과외 선생님이 된다. 고되게 일하며 말수가 줄어든 두 사람을 통해, 이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한 밤을 묘사한다. ‘취업’과 ‘입시’라는 당면 과제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두 사람은, 편의점의 형광등 조명 아래 창백한 얼굴색을 하고 여름밤을 위태롭게 걸어간다. 그런 둘이 서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머리를 맞대는 결말은 소박한 위안이다.

3. ‘수난이대’│김한라│극영화│단편경쟁
아버지는 노동운동을 했지만 아들은 ‘일베(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준말)’를 한다. 근찬(하성광)은 친구들과 사람을 때리며 인증 동영상을 찍다 경찰서에 간 아들 진수(정재광)의 합의금을 마련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진수는 시큰둥하고, 그저 자신의 게시물을 일베의 베스트 글로 올리려 혈안돼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흙수저’라 통칭하는 가난한 서민의 삶이 어떤 식으로 대물림되고, 그것이 어떤 괴물을 낳게 되는지 현실적으로 그려 낸다. ‘살생부’라는 계를 만들어 서로의 아버지를 때리면서도 웃으며 ‘인증샷’을 올리는 남자 고등학생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초상이다.

4.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모’│임대형│극영화│장편경쟁
지역 변두리의 중년 이발사 모금산(기주봉). 아내와는 사별했고, 하나뿐인 아들 스데반(오정환)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서울에 가 있다. 일을 하고, 수영장에 가고,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 하며 보내는 단조로운 하루. 위암 선고를 받은 그는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을 불러 자신이 쓴 시놉시스를 건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걸로 영화를 만들자”고.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찍은 이 작품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향한 향수로 가득 차 있다. 낡은 이발관, 쌍화차를 파는 다방 등 공간뿐 아니라 ‘무성영화’라는 요소까지. 특히 모금산을 연기한 배우 기주봉의 얼굴은 세월을 초월한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웃음과 쓸쓸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대사보다는 장면 장면의 리듬으로 이끌어 가며, 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정서를 전하는 ‘영화적인 영화’다. 마지막 부분에서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하는 모금산의 영화는, 무성영화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담아냈다. 마음이 찡해질 만큼 아름다운 대목이다.

5. ‘라이츄의 입시지옥’│김현│극영화│새로운선택
독특한 제목처럼, 어떤 연관성도 찾기 힘든 요소들이 어지럽게 공존하는 영화다. 17년째 방에서 프랑스 영화만 보던 창렬(황상원)은 프랑스인이 됐다. 창렬의 아버지 박정희(신준현)와 어머니 박근혜(정애화)는 ‘프랑수아 트뤼포’(내바다)라는 프랑스인 의사를 부른다. 이토록 이상하고 발칙한 조합이 신선한 건, 이 영화가 결국 영화 매체의 의미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갖고 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마치 제 인생처럼”이라는 등장인물의 말처럼. 의미를 찾는 게 무의미해 보이지만, 염두에 둘 게 있다. 프랑스 영화·현대 국내 정치·막장 드라마의 구성을 버무려, 이 영화만의 기묘하고도 ‘살짝 미친 것 같은’ 매력을 만들어 냈다는 점. 단편영화의 패기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6. ‘빙빙’│임철민│실험영화│단편경쟁
다양한 영상을 조합해 기이하고 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온 임철민 감독. 전작 ‘프리즈마’(2013) 등을 통해, 난해하지만 아련한 감성의 영상으로 카메라와 대상의 독특한 움직임을 담아낸 실험영화를 작업해 왔다. ‘빙빙’은 더욱 강렬하다. 원을 그리며 스케이트를 타는 청년들, 놀이 기구 디스코 팡팡의 움직임 등이 연이어 나타난다. 끝없이 돌고 도는 이미지들은 독특한 사운드와 맞물려, 서글픈 도시의 단면을 힘 있게 포착한다. 말이 아닌 영상과 사운드의 힘만으로 만드는 영화적 감흥을 체험해 볼 기회다. 제1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제21회 인디포럼 등에 초청된 바 있다.

7. ‘천막’│이란희│극영화│단편경쟁
3169일이 넘도록 천막 농성 중인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인근(이인근)·경봉(이경봉)·재춘(임재춘). 어느 날 소송 비용 청구서가 날아들자, 세 사람은 투쟁을 계속할지 옥신각신한다. 다큐멘터리라 착각할 만큼, 천막 농성 현장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영화. 세 출연자 모두 실제 해고 노동자들로, 이란희 감독이 쓴 각본을 직접 연기했다. 길고 긴 투쟁에 가족도 보살피지 못했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아 농성을 끝낼 수 없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리지만, 한편으론 당당하고 결연한 세 사람의 모습에 위엄마저 느껴진다. 현실과 영화 사이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단편.

김나현 기자·윤이나 영화칼럼니스트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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