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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행동주의 펀드…투자 않고 쌓아둔 돈 배당 요구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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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펀드 매니저 입장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합병 비율이 물산 쪽에 불리했다고 봅니다.”

라임자산운용 원종준 대표
“경제민주화 요구 갈수록 커지며
오너 말에 순응 분위기 달라져”

최근 국내 첫 행동주의 헤지펀드 ‘라임 데모크라시 제1호’를 출시한 원종준(37·사진) 라임자산운용 대표의 말이다.

그는 “국민연금이 지금 난처한 상황에 처한 건 숙명적인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며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그간의 행태가 ‘최순실 사태’와 맞물리면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연금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무리하게’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주식을 산 뒤 주가가 오를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지배구조 개편 등 주주 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했고 최근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이다.

이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펀드 수는 2010년 76개에서 작년엔 397개로 급증했다. 운용 자산 규모도 같은 기간 385억 달러에서 1297억 달러로 늘었다.

돈이 몰리는 건 수익률 때문이다. 2005년 이후 지난 8월까지 헤지펀드가 연평균 1.3% 수익을 올리는데 그친 반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연 8.8%의 성과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이제야 첫 펀드가 나왔다. 원 대표는 “2008년 라자드자산운용에서 일명 ‘장하성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거세지고 ‘오너’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최순실 사태가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혹 제기로 그간 기업 로비력에 막혔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동강령)’ 도입이 탄력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우선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기업들에 투자할 계획이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인적 분할(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 비율대로 신설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한 27개 기업의 시가총액은 분할 발표 9개월 뒤 평균 91% 증가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요구하는 배당 확대 등이 기업의 장기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원 대표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라고 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돈을 당장 배당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며 “투자도 안 하면서 쓸데없이 돈을 쓰거나 쌓아놓는 행태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현대차가 미래차 사업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으로 10조원 쓰는 건 괜찮지만 땅 사는 데 10조원 쏟아붓느니 차라리 배당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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