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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업 혁신의 현장] 오바마도 놀랐다, 3D 프린터로 ‘인쇄’한 이 자동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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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차 제조공정 바꾸는 로컬모터스

2014년 6월18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역사상 최초로 열렸던 ‘백악관 메이커 페어(2014 White House Maker Fair).’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혁신(innovation)’이라는 수식어를 4번이나 사용하면서 극찬한 기업이 있다. 벤처 기업 로컬모터스(Local Motors)다.

직원 3명이 기계 2대로 부품 조립…40시간 만에 차체 뚝딱
나만의 맞춤형 디자인·인테리어 완성 ‘식은 죽 먹기’
R&D 전 과정 공개…인공지능 자율주행차까지 내놔

로컬모터스는 매출액이 불과 수백만 달러(수백억원)로 추정된다. 규모로 보면 같은 자리에 초대받은 디즈니(연매출 524억 달러·약 65조원)나 인텔(연매출 493억달러·약 54조원)과 비할 바 아니다.

로컬모터스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초미니 공장(microfactory)’에서 3D 프린터기를 이용해 ‘스트라티’를 ‘찍어내고’ 있는 모습. [사진 로컬모터스]

로컬모터스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초미니 공장(microfactory)’에서 3D 프린터기를 이용해 ‘스트라티’를 ‘찍어내고’ 있는 모습. [사진 로컬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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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주목한건 로컬모터스가 포드차의 뒤를 이을 혁신 기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 포드자동차 창업자가 1911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100년 이상 자동차 제조 공정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았다. 로컬모터스는 이 공고한 성벽을 흔드는 기업으로 꼽힌다. 세계 최초로 3D(차원) 프린터를 도입해 자동차를 ‘찍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직접 방문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소재 로컬모터스 공장은 일단 ‘규모가 너무 작아’ 인상적이었다. 공장 정식 명칭부터 ‘초미니 공장(Microfactory)’이다. 건물엔 봉고차 크기만한 기계 2개가 서 있다. 한 대는 차체를 ‘인쇄’하는 3D 프린터고, 다른 한 대는 여기서 인쇄한 차체를 매끄럽게 다듬는 기계(트리머·trimmer)다.

컴퓨터에 도면을 입력하면 3차원 프린터가 차체를 생산한다. 탄소 섬유와 플라스틱 혼합재를 집어넣고 ‘프린트’ 버튼을 클릭하면 불과 40시간 만에 차체가 완성된다. 여기서 나온 차체를 트리머가 가다듬는다. 다음엔 포드·크라이슬러·GM 등 기존 자동차 회사에서 미리 주문해뒀던 브레이크·엔진·기어와 같은 부품을 조립하면 뚝딱 차량 한 대가 완성된다. 모든 공장 공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근로자가 3명이면 족하다. 이날도 로컬모터스 공장에서는 단 3명이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총 근로자는 100여명으로 현대차 울산공장(3만명)의 0.3%에 불과하다.

비록 3D프린터로 찍어냈지만 승차감과 성능도 훌륭한 편이다. 미국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 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거라지(Jay Leno’s Garage)에서 로컬모터스의 차량을 직접 운전했다. 그는 “차량의 파워가 좋고 콘셉트가 훌륭하며, 오프로드와 고속도로에서 모두 운전의 즐거움을 준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일반적인 공장과 다른 풍경은 혁신적인 차량 제조 방식(이노팩처링·innovation-manufacturing)에서 비롯된다. 기존 자동차업이 순수 제조업이라면, 로컬모터스는 정보통신(IT) 기반 제조업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온라인 상에서 제조 공정의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차체·섀시·인테리어 디자인 과정엔 로컬모터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문 자동차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비평을 가한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에 투표하거나, 스스로 그려본 디자인을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다.

연구개발(R&D)도 혁신적이다. 통상 자동차 제조사는 보안 유지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경쟁사에 정보가 노출되지는 않지만, R&D 참여자 역시 제한적이다. 반면 로컬모터스는 개발 전(全)과정을 공개하는 ‘오픈 소스(open source)’방식을 선언했다. 차량 개발 아이디어를 공개된 온라인 공간에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변형하거나 재배포할 수 있다. 분야 별로 다수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고, 차량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수정도 가능하다.

<b>랠리파이터(2009년)</b> 가격 8만~9만 달러 3D 프린터를 쓰진 않았지만 오픈소스 방식으로 개발한 오프로드(비포장도로) 전용 자동차

랠리파이터(2009년) 가격 8만~9만 달러 3D 프린터를 쓰진 않았지만 오픈소스 방식으로 개발한 오프로드(비포장도로) 전용 자동차

실제로 로컬 모터스가 설립 2년 만인 2009년 선보인 모델 ‘랠리파이터(Rally Fighter)’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으로 완성됐다. 크라우드 소싱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crowd)이 아웃소싱(outsourcing)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랠리파이터는 영화 ‘트랜스포머 4’에서 사막 경주용 자동차로 등장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b>스트라티(2014년)</b> 가격 3만 달러 내외(미정) 로컬모터스 최초의 3D 프린팅 전기차로 최대 40마일의 속도로 주행이 가능

스트라티(2014년) 가격 3만 달러 내외(미정) 로컬모터스 최초의 3D 프린팅 전기차로 최대 40마일의 속도로 주행이 가능

2011년 미국 국방부 ‘전투지원차량 디자인 공모전’에서 로컬모터스가 우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담 크레스 로컬모터스 대변인은 “억대 연봉을 받는 소수의 전문가가 개발한 차량보다 훨씬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며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하는 ‘롱테일법칙(Long Tail Theory)’이 적용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b>스윔(2015년)</b> 가격 5만 달러 내외(미정) 고속도로 주행 불가능한 ‘스트라티’의 단점을 보완, 속도를 높인 3D 프린팅 전기차

스윔(2015년) 가격 5만 달러 내외(미정) 고속도로 주행 불가능한 ‘스트라티’의 단점을 보완, 속도를 높인 3D 프린팅 전기차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그간 시스코 등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주로 시도했다. 로컬모터스는 자동차 산업에서 사실상 최초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한 것이다.

<b>올리(2016년)</b> 가격 미정 3D 프린터로 만든 12인승 전기차 버스. IBM의 인공지능 탑재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올리(2016년) 가격 미정 3D 프린터로 만든 12인승 전기차 버스. IBM의 인공지능 탑재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Watson)’을 최초로 차량에 도입한 것도 로컬모터스다. 올해 6월 선보인 12인승 전기차 버스 ‘올리(Olli)’의 ‘진짜 운전사’는 왓슨이다. 이 차량은 조만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플로리다, 워싱턴DC 일부 구간에 실제로 투입될 예정이다.

차량의 외형이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클릭 몇 번이면 디자인이 달라진다. 물론 마세라티 등 일부 수제 자동차 제조사도 개인 맞춤형 디자인을 제공하지만, 가격이 상승한다. 이에 비해 로컬모터스는 디자인을 바꾼다고 차량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다.

개인 맞춤형 디자인을 제공하더라도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제조 공정이 ‘선 주문, 후 생산’이기 때문이다. 고객 주문을 받고 나서 공장을 돌려도 늦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고 차량을 쌓아둘 적재 공간도 필요 없다. 로컬모터스 공장 규모(1858㎡·약 560평)가 현대차 울산공장(505만m²·153만평) 대비 ‘코딱지만 한’ 또 다른 이유다.

미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거쳐 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 일했던 존 로저스 로컬모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고 로컬모터스를 2007년 창업했다. 그는 “기존 컨베이어 벨트식 차량 생산 방식은 미래가 없다”며 “화석연료 소모량을 줄이려면 완전히 새로운 차량 개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피닉스=박성민 객원 기자,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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