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38번 암살을 피한 피델 카스트로…흥미진진한 암살 시도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5일(현지시간) 별세한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의장(사진)은 살아 생전 638번 암살을 피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누가 그토록 카스트로를 죽이려 했을까?

십중팔구는 미국이었다. 카스트로는 미국에겐 눈엣가시였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쿠바를 1959년 공산화한 데 이어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 공산 혁명을 수출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할 때마다 실패했던 미 CIA 현관.  [사진 인터셉트]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할 때마다 실패했던 미 CIA 현관. [사진 인터셉트]

그래서 59년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암살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는 천수를 누리고 90세 세상을 떴다. 그래서 카스트로 암살은 CIA의 흑역사라고 불린다.

다큐멘터리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의 포스터

다큐멘터리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의 포스터. [사진 채널4]

638번이란 숫자는 쿠바 비밀정보국(DI)의 수장을 지낸 파비안 에스칼란테가 처음 얘기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카스트로의 암살 기도가 638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4는 2006년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뒤로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638번이 과장된 수치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실패한 공작도 있지만, 대개 아이디어 차원이거나 중도 포기한 경우라는 설명이다.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 기도를 부인했다. 왜냐면 정부 차원의 외국 국가 수반 암살은 유엔 헌장에 거슬리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75년 미 상원의 특별위원회는 60~65년 CIA의 카스트로 암살 공작이 8차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개 CIA가 쿠바 망명자들을 포섭해 암살 공작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우였다.

영화 `대부 2`에서 미국 마피아들이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 모여 이권을 논의하고 있는 장면.  [사진 파라마운트]

영화 `대부 2`에서 미국 마피아들이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 모여 이권을 논의하고 있는 장면. [사진 파라마운트]

미국의 범죄 조직 마피아도 CIA의 카스트로 암살 공작에 가담했다. 영화 ‘대부 2’가 그렸듯이 마피아는 쿠바의 카지노와 유흥 산업에 이권을 갖고 있었는데, 공산화로 이를 다 잃었기 때문이다. CIA도 노출을 우려해 마피아를 통해 암살 공작을 실행하는 걸 선호했다.

638번 암살 시도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생전 시가를 늘 입에 물고 다녔던 카스트로.

생전 시가를 늘 입에 물고 다녔던 카스트로.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많았다. 가장 기발한 것은 카스트로가 좋아하는 시가에 폭발물을 내장해 카스트로의 얼굴을 날려버리는 방법이었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암살 기도는 1960년 카스트로가 유엔 방문을 위해 뉴욕에 갔을 때 있었다. 시가 폭탄을 카스트로에게 줘 터뜨린다는 아이디어였다. 또 시가에 독극물을 바르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금연 시도로 실패했다.

스킨 스쿠버를 즐기는 카스트로.

스킨 스쿠버를 즐기는 카스트로.

카스트로가 스쿠버 다이빙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CIA는 이런 암살 방법도 생각해냈다. 카스트로가 즐겨 찾는 바닷가 조개에 폭발물을 설치하거나 카스트로의 다이빙복에 세균을 묻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끝났다.

볼펜 독침으로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작전도 있었지만 실패했다. 카스트로가 매일 습관처럼 마셨던 밀크셰이크에 독약을 탔지만, 그 밀크셰이크가 다 녹아버리는 바람에 독약의 약효가 떨어지면서 허사가 됐다. 카스트로의 손수건이나 그가 마시는 차나 커피에 박테리아를 투입하는 것도 생각했다.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한 마리타 로렌즈(77)는 독일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동독에서 자란 그는 1959년 쿠바 공산 혁명 후 카스트로와 동거했다. 그러나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CIA에 포섭됐다고 한다. 젊을 때 로렌즈와 최근 모습.  [사진 선더스 마우스, 유튜브 캡처]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한 마리타 로렌즈(77)는 독일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동독에서 자란 그는 1959년 쿠바 공산 혁명 후 카스트로와 동거했다. 그러나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CIA에 포섭됐다고 한다. 젊을 때 로렌즈와 최근 모습. [사진 선더스 마우스, 유튜브 캡처]

카스트로의 전 애인인 마리타 로렌즈를 암살자로 포섭한 공작도 있었다. 로렌즈가 콜드크림 통에 독약을 숨긴 채 카스트로를 찾아갔다. 이 음모를 미리 안 카스트로는 권총을 로렌즈에게 건네며 자신을 쏘라고 했다. 로렌즈는 “피델, 나는 못하겠다”며 포기했다고 한다.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를 즐기는 카스트로의 성격을 이용한 암살 작전도 있었다. 미 CIA는 단상의 마이크에 고전압을 넣으려고 시도했다. 군사 행진에서 연설하는 카스트로.  [사진 듀크대]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를 즐기는 카스트로의 성격을 이용한 암살 작전도 있었다. 미 CIA는 단상의 마이크에 고전압을 넣으려고 시도했다. 군사 행진에서 연설하는 카스트로. [사진 듀크대]

쿠바에 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박물관에 카스트로가 방문할 때 폭탄을 터뜨리려 하거나 카스트로의 옛날 친구를 꾀어 총으로 사살하려 한 시도도 있었다. 카스트로가 연설하는 단상의 마이크에 고전압을 넣거나 야구공에 폭탄을 넣은 뒤 카스트로에게 던지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실제 암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카스트로의 위신을 깎으려는 기도도 있었다. 탈모를 촉진하는 탈륨 소금을 몰래 타 카스트로의 유명한 수염을 다 빠지게 하는 공작, 라디오 스튜디오에 마약인 LSD 성분을 뿌려 생방송 중 환각 상태에 빠진 카스트로가 횡설수설토록 만드는 공작 등이었다.거듭된 암살 음모 때문에 카스트로는 거리를 혼자 걸어다니던 습관을 그만 뒀고, 자신과 똑같이 변장한 가짜 카스트로를 동원했다. 또 쿠바 안에 20개의 집을 둬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카스트로에게 보내지는 선물은 철저한 검색을 거쳤다.

언젠가 카스트로는 100세를 산다는 갈라파고스 거북을 선물로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내가 온갖 애정을 다 쏟고 나면 나보다 먼저 죽는다”며 “애완동물은 그게 문제”라고 말했다. 잇따른 암살 공작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자신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카스트로가 미국의 암살 공작을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었을까?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 그는 공산주의자였고, 소련 시민권을 따려고 소련에서 2년을 살았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 그는 공산주의자였고, 소련 시민권을 따려고 소련에서 2년을 살았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에 카스트로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의 배후에 쿠바와 카스트로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다큐멘터리 감독 빌프리트 휘스만의 ‘케네디와 카스트로, 그 운명의 승부’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은 케네디와 CIA에 대한 카스트로의 보복 행위였고, 오스왈드는 지적이고 냉철한 반체제주의자였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케네디의 후임자 린든 존슨 대통령은 카스트로 개입 사실을 알았지만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봉합했다고 주장했다. 또 쿠바의 케네디 암살 공작에 멕시코와 소련도 도왔다고 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