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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한 재산 입증 못하면 몰수하는 특별법 있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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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10면

“(검찰이) 재산환수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현안질의 과정에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 재산 환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씨의 재산 규모를 묻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질문에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덧붙인 말이었다.

최순실씨가 지난해 11월 55만 유로(약 7억원)에 사들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비덱 타우누스 호텔. [중앙포토]

하지만 최씨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본적으로 최순실씨 재산의 큰 부분은 1994년 사망한 최태민씨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으로 추정된다. 최태민씨는 1970~80년대 육영재단과 영남대재단 운영 등에 개입해 불법적인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이 있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최태민씨의 후손들의 재산이 범죄 수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최씨 집안의 재산이 범죄행위의 결과라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부정축재 과정에서 처벌받은 적이 없는 최씨의 유산을 몰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상 몰수나 추징 명령은 부정한 재산을 형성한 원인이 되는 범죄에 대한 형의 선고와 함께 내려지고 형 확정 후 3년 내에 집행되지 못하면 효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최순실씨가 소유한 서울 강남의 미승빌딩. [뉴시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파트너 변호사는 “재산 추징에 앞서 범죄 행위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최태민씨가 사망해 범죄 행위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날 수가 없어 형법에 따른 몰수나 추징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최씨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처분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형법상의 몰수·추징 규정으로는 범죄행위의 직접적 결과로 얻은 물건이나 이익만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을 뿐 부동산 거래나 주식투자 등으로 증식한 재산까지 손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씨가 가진 가장 큰 부동산이던 강남구 신사동의 엔젤빌딩은 2008년에, 경기도 하남에 사들였던 토지는 지난해 팔아 치웠다. 최씨가 이 돈을 어떻게 굴리고 사용했는지 드러난 적이 없다.


최씨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저지른 범죄로 형성한 재산만을 몰수하는 데도 장벽이 많다. 최씨의 혐의에 뇌물공여 등이 포함된다면 그 대가로 받은 이익은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나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몰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들 법률은 형법과 달리 범죄 행위의 직접적 결과물에 그치지 않고 파생된 이익까지도 몰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전두환 추징법’은 2013년 개정으로 몰수·추징의 시효도 10년으로 늘려 놓았다.


그러나 ‘전두환 추징법’을 공무원과 그 가족이 아닌 최순실씨에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부패범죄몰수추징법’은 공무원 범죄가 아닌 민간인이 횡령·배임 등으로 얻은 이익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지난 20일 기소된 최순실씨가 지금까지 받고 있는 혐의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직권남용과 사기 미수다. 최씨가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각종 이권을 취했더라도 그 회삿돈을 빼돌린 사실(횡령) 등이 입증되지 않으면 재산 몰수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현행법으로 몰수가 가능한가”라는 안 의원의 질문에 김 장관이 “(법적)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답한 것도 그래서다. 여야가 최씨 재산 몰수를 위한 특별법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도 이 같은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다.


몰수의 원인이 되는 범죄의 폭을 넓히고 집행의 시효를 늘리는 것이 특별법안들의 공통된 내용이다. 그러나 특별법이 도입되더라도 최씨의 재산 중 어느 정도가 실제 몰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태민씨까지 거슬러 올라가 범죄 수익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지나치게 포괄적인 특별법을 만들면 위헌 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특별법을 만들더라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관기 변호사는 “공직자에게 압력을 가해 얻은 이득에 대해선 적법한 수단으로 얻은 이익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부당한 이득으로 추정해 몰수하는 형태의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장혁·문희철·정진우 기자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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