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 속으로] “중고폰 1+1 행사 는 100% 대포폰…명의 빌려주면 70만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최순실·안종범이 이용한 ‘차명폰’

지난 22일 오후 5시쯤 휴대전화 매장이 밀집한 대전의 한 상가를 찾았다. 매장마다 ‘1+1 스마트폰’ ‘중고폰 매입·판매’ ‘공짜폰 행사 중’ 등의 문구가 내걸려 있었다. 중고폰을 판매하는 매장에 들어가 “대포폰이 있느냐”고 묻자 직원은 “그건 불법인데 여기서 찾으면 안 되죠”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1+1 행사’라는 광고 문구가 붙은 매장 주변을 서성거리자 “찾는 물건 있으세요”라며 20대 초반의 남성이 다가왔다. “글쎄요, 만들기는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자 기자를 휴대전화 매장으로 이끌고 갔다. 구석 자리에 앉히더니 “두 대를 개통하는 데 한 푼도 안 든다. 돈이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바로 70만~80만원을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한 대만 사용하고 한 대는 대포폰으로 팔아 넘기는 방식이다. 명의만 빌려주면 자신들이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하니 걱정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대포폰 개통 현장이었다.

최근 노숙자 대신 외국인 관광객 도용
급전 필요한 사람들 명의 빌려 개설
1인당 4대 개통, 200여만원 목돈 쥐어

대포폰 불법거래를 수사해 온 대전지방경찰청 윤정호(47) 수사관은 “누가 한꺼번에 휴대전화를 두 대씩 개통하겠나. 1+1 행사는 100% 대포폰이라고 보면 된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노린 신종 수법”이라고 말했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와중에 대포폰이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포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씨는 물론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까지 4~5대의 대포폰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포폰이란 ‘가입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휴대전화’다. ‘차명폰’이라고도 부르지만 업계에선 대포폰으로 통용된다. 유심칩이 제거된 단말기는 대포폰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18일 포털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포폰’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한 SNS에 ‘핸드폰 대출’ ‘돈 필요한 분 연락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대포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고매매업자였다. 경찰은 이들을 ‘떴다방’이라고 부른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쯤 활동하다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매매업자가 알려준 카카오톡 계정(A****6*)을 통해 “한두 달 정도 사용할 휴대전화가 필요하다”고 연락했더니 상대방은 “어디냐. 얼마짜리를 원하느냐”고 물어왔다. 통장으로 돈을 보내면 3~4시간 뒤 퀵서비스로 원하는 기종을 보내준다고 했다. 20만원이면 폴더폰, 50만원이면 스마트폰이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윤정호 수사관은 “(떴다방 업자들은) 위치 추적이 어려운 데다 수시로 단말기를 바꾸기 때문에 검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고업자들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보통 한 달가량 사용한 뒤 폐기한다. 신분을 숨기고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노숙자나 신용불량자, 중국동포(조선족) 등에게 10만~20만원을 주고 신분증을 넘겨받은 뒤 대포폰을 개설하는 게 흔한 수법이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 명의를 도용하거나 급전이 필요한 사람 명의를 빌려 휴대전화를 개설한 뒤 대포폰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수법이 진화했다.

명의를 빌려주면 대당 60만~70만원을 건네받는다. 1인당 최대 4 대까지 개통이 가능하니 앉은 자리에서 240만~280만원을 손에 쥐는 셈이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당장 목돈이 들어오고 3개월 뒤 분실신고를 하면 단말기 할부금 납부 책임만 남기 때문이다. 약정 기간(24~36개월)의 통신요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 주로 카드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이런 수법을 이용한다. 일부 대리점에선 고객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설한 뒤 2~3개월 후 40만~50만원을 받고 대포폰으로 팔아넘기기도 한다.

요즘 대포폰은 단말기+유심칩, 단말기, 유십칩 등 세 유형으로 거래된다.

대포폰을 개설·판매하거나 범죄에 이용하면 처벌받는다. 현행법(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와 제97조)에 따르면 대포폰을 개설·판매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같은 법 32조의 4(이동통신단말장치 부정이용 방지 등)와 제95조에는 대포폰을 구입하거나 빌리거나 이용하는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259건, 1만1490대에 불과하던 대포폰 단속 실적이 올 들어선 8월 말까지 572건, 2만8712대로 급증했다. 경찰은 유통되는 대포폰은 이보다 열 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태진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겸임교수는 “스마트폰 실명제 도입 등을 통해 안전장치를 강화하면 대포폰 유통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매장 점장이 고객 명의 도용…가입신청서 원본 돌려받아야

지난 10일 대전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서 고객 명의로 250대의 휴대전화를 개설한 뒤 이를 팔아넘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점장이 직원들과 공모해 기존 고객이 작성했던 가입신청서와 신분증 사본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개설한 것이다. 이들은 이 휴대전화를 대포폰으로 팔아넘겨 2억원을 챙겼다. 고객들은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경찰 수사가 이뤄지고서야 알았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만 주의하면 대포폰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첫째는 휴대전화를 개설한 뒤엔 작성했던 가입신청서 원본을 돌려받는 것이다. 복사본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리점에서 보관용으로 남긴 사진파일(스캔)도 삭제를 요구한다.

둘째, 6개월 단위로 자신의 명의로 개설된 휴대전화가 있는지 통신사를 통해 확인한다. 이동통신사 고객센터를 이용하고 통화 내용도 녹음한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웹사이트 엠세이퍼(www.msafer.or.kr)에서도 휴대전화 가입 현황을 조회할 수 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신규 가입 제한도 가능하다.

셋째, 명의 도용 피해를 봤다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곧바로 경찰서에 신고한다. 명의 도용 사실을 알고 통신사나 대리점에 항의하면 무마를 조건으로 각종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할 때가 있다. 거부하는 게 바람직하다. 본인과 타인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