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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유산된 채로 자선연주회 연 이상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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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5월이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이상희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질문을 했다.

“만삭의 몸으로 연주회를 했다면서요?”

“2013년 9회 연주회 때 그랬습니다.

사실 2012년 8회 연주회를 며칠 앞두고 유산을 했습니다.

결혼 후 7년 만에 생긴 아기였습니다.

병원에서 아기가 숨을 안 쉬니 당장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정된 연주회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배 속에 유산된 아기를 둔 채로 연주회를 했습니다.”

그녀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위로의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무거운 침묵이었다.

숨을 고른 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 일로 인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때 어린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또 연주회를 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스스로 남을 돕겠다는 의지가 생겨버린 제자의 기특한 마음에 힘을 얻었습니다.

연주회를 다시 준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의 아이가 생겼죠.

만삭의 몸으로 연주한 게 그때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연주회는 모두 자선을 위한 것이다.

숨 쉬지 않는 자신의 아기를 배 속에 두고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연주를 한 게다.

그녀는 2005년부터 매년 자비로 자선음악회를 열어왔다.

그리고 수익금 전액을 국제백신연구소(IVI)에 기부해 왔다.

11년 동안 기부한 누적 금액이 약 8800만원이었다.

당시 그녀는 8월에 또 자선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열두 번째 연주회를 통해 누적 기부액 1억원을 돌파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1만원이면 개도국 어린이 세 명이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으니

3만 명이 혜택을 받는 셈이라고 했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사진을 미리 검색해 봤었다.

검색되는 사진은 달랑 몇 장뿐이었다. 의외였다.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퍼스트 클래스(First class)로 졸업한

그녀의 경력에 비하면 사진이 없어도 너무 없는 편이었다.

그 이유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돌잔치 비용까지 기부했다고 했다.

덜 먹고, 덜 쓰면 기부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제대로 돈을 들여 사진을 찍을 리 만무했을 터다.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그녀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남을 돕다 보면 더 큰 사랑이 내게 오잖아요. 제 아이가 생긴 것처럼요.”

8월의 공연 날 저녁, 목표를 달성했는지 궁금하여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심하게 쉬어 있었다.

제자와 지인 등 68명의 연주단원을 이끌다 보니 그리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쉰 목소리에도 뿌듯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숫자 하나하나마다 또박또박 힘주어 달성 금액을 말했다.

“누적 금액이 총 1억222만9500원이 되었습니다. 참! 올해 연주회를 한 번 더 할 겁니다.

1억 목표 달성 기념으로요.”

8월에 그녀가 뿌듯한 듯 말했던 기념공연, 바로 오늘이다.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홀에서다.

이 또한 어김없이 기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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