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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박격포 중사 “니가 박격포면 난 미사일” 장난 김대장 상사“공군에 대장 한 명 더 있네” 농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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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공군15특수임무비행단 ‘박격포’ 중사

공군15특수임무비행단 ‘박격포’ 중사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는데 박격포가 가만 있으면 되겠어?”

무기 같은 이름
어택 하사 “적이 나타나면 꼭 어택할 것”
박기갑 중위 “기갑병 되란 말에 군인 돼”
지위 높은 이름
지휘관 병장 “6월 25일 새벽 4시 태어나”
김국군 소령 “국군의날 축하 전화 쇄도”

공군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격포’(32) 중사. 올 들어 부쩍 이런 ‘농담 반 진담 반’ 얘기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자신의 이름이 육군 보병이 사용하는 화포 명칭이기 때문이다. 육·해·공군에는 이처럼 국방과 관련된 이색 이름을 가진 군인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박 중사는 현재 육군이 아닌 공군 방공관제사령부 예하 부대에서 항공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이름처럼 ‘우락부락’한 외모는 아니다. 목소리도 남자 치곤 약간 가는 편이다.

‘격포’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줬다고 한다. 박 중사는 “아버지에게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더니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박격포 부대에서 근무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또 내가 어렸을 때 유약했는데 아들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고 말했다. 이름 덕분일까. 박 중사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군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3년 항공기 유압테스터 장비 커넥터를 처음 제작해 공군참모총장상도 받았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름 때문에 해프닝이 적지 않았다. 박 중사가 초임 하사 때 얘기다. 어느 날 영내 대기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막내였던 박 중사가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야대 박격포 하사입니다. 통신보안”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곤 “뭐라고”라는 거친 응답이 돌아왔다. 다시 똑같이 말하자 상대방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장난 치나. 네가 박격포면 나는 미사일이다.”

육군에 안 가고 왜 공군 왔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박 중사는 “개인적으로 정비하는 일이 좋아서 공군 쪽으로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과 같은 박격포가 뭔지 궁금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다. 박격포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해군2함대 참수리 325정 ‘어택’ 하사

해군2함대 참수리 325정 ‘어택’ 하사

해군에는 ‘어 택’(23) 하사가 있다. ‘공격’이란 뜻의 영어 ‘attack’과 발음이 같다.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작명을 할 때 영어 발음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어 하사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어 하사가 타는 배는 참수리 325호정이다. 영화 ‘연평해전’에 등장하는 그 배다. 이 함정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 제1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 참전해 승리를 거뒀다. 현재 어 하사는 서해 최북단 연평도와 백령도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는 “북한 선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 어선 보호도 주요 임무 중 하나다”며 “상황이 발생하면 배에 장착된 함포와 20㎜ 벌컨포를 직접 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천생 군인이다. 하는 일과 이름이 잘 어울리고 맞는다고 생각한다. 적이 나타나면 반드시 어택할 것”이라며 뿌듯해 했다.

육군11사단 공병대대 ‘박기갑’ 중위

육군11사단 공병대대 ‘박기갑’ 중위

육군 ‘박기갑’ 중위가 군인이 된 건 이름 때문이다. 박 중위는 “어릴 때부터 주변 어른들이 ‘나중에 군대 갈 때 기갑병과로 가면 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계속 듣다 보니 군인이 되겠다는 마음이 굳어진 것 같다”고 했다. 기갑은 전차를 운용하는 병과다. 하지만 박 중위의 임무는 전차와는 거리가 있다. 강원도 홍천 최전방에 있는 공병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사회에선 ‘기갑’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지만 군에서는 내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된다”며 “몇 년 전 작전 때 기갑부대 지원을 나갔는데 주변에서 ‘기갑 소대장’이라고 부르면서 장난을 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군방공관제사령부 예하 34전대 ‘지휘관’ 병장

공군방공관제사령부 예하 34전대 ‘지휘관’ 병장

이름 덕분에 군에서 이미 상당한 지위를 오른 병사도 있다. 공군 소속의 ‘지휘관’ 병장이다. 이름 한자도 ‘휘두를 휘(揮)’ ‘벼슬 관(官)’을 쓴다. 남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지휘관과 같다.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다. 지 병장의 생일은 6월 25일로, 태어난 시각도 오전 4시다. 6·25 전쟁 발발과 일시가 같다. 지 병장의 어머니는 아들이 커서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해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 병장은 중앙대 심리학과 1학년 재학 중 공군에 입대했다.

별 4개의 계급을 가진 4성 장군은 대장으로 불린다.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소속의 ‘김대장’ 상사는 이름 자체가 대장이다. 우량아로 태어난 그가 ‘대장감’이라며 어머니가 이런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합참의장(대장)이나 참모총장(대장)이 그의 부대를 방문하면 “공군에 대장이 한 명 더 있다”는 농담이 오간다고 한다.

해군교육사 교육발전처 ‘김국군’ 소령(左), 육군7사단 왕자포병대대 군수과 ‘배태랑’ 상병(右)

해군교육사 교육발전처 ‘김국군’ 소령(左), 육군7사단 왕자포병대대 군수과 ‘배태랑’ 상병(右)

이외에도 국군의 날(10월 1일)에 태어난 ‘김국군’ 소령도 있다. 김 소령의 아버지가 육군 대위 때 직접 지은 이름이다. 해군 교육사에 근무하는 김 소령은 “국군의 날이 생일이라 매년 동료들로부터 엄청난 축하를 받는다”며 웃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155mm 견인포병으로 근무 중인 육군 배태랑 상병은 기술이 뛰어난 전문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베테랑과 발음이 같다.

국어사전에 안 나오는 ‘관등성명’ 어디서 유래됐나

“2번 작전병 윤형빈.”

지난달 30일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 출연한 개그맨 윤형빈씨가 자신의 호칭을 잘못 말해 얼차려를 받았다. 전투병인데 작전병이라고 말한 것이다.

요즘에는 군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갓 입대한 장병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말 중 하나가 ‘관등성명’이다. 자신의 계급과 이름을 붙인 자기소개다. 관등성명은 상급자가 불렀을 때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군에서 쓰는 관등성명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관등성명(官等姓名)’이란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통용되고 있는 단어인데도 빠졌다. 대신 관등과 성명이란 단어로 각각 설명돼 있다. 관등은 벼슬의 등급이다. 관(官)은 나랏일을 맡아 하는 자리이고 등(等)은 등급이다. 성명은 말 그대로 이름이다.

군에서 자주 쓰는 용어 중 ‘복명복창’도 있다. 상급자가 내린 지시를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다. 명령을 정확히 듣고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군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관등성명도 복명복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상급자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인지했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한다.

2011년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는 점검 차원에서 소방서에 전화했다가 응대를 하는 소방관에게 ‘관등성명을 대라’고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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