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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따윈 걷어찬 중구난방 소설, 그런데 통쾌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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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학이 된 사나이
오한기 지음, 문학동네
180쪽, 1만2000원

‘후장사실주의’라는 민망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칭하는 젊은 작가 집단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장편이다. 멤버 중 하나인 1985년생 소설가 오한기의 작품을 같은 집단 소속 83년생 문학평론가 황예인이 편집했다.

이야기 혹은 소설은 대체로 매혹적이지만 지겨울 때도 있다. 작가는 작품 뒤에 숨어 마치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일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처럼 능청 떨며 한 문장 한 문장 벽돌 쌓듯 서사를 짜나간다. 하지만 실은 상당 부분 상상력을 발휘한 가상의 세계, 헛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긴박한 호흡 안에 별난 이야기를, 그것도 뭉클한 메시지와 함께 버무려 내느냐일 텐데 거의 기예 수준의 내공과 공력이 요구된다. 그렇게 잘 빚어진 이야기는 실은 냉철한 이성과 논리적 추론의 산물이다.

『홍학이 된 사나이』는 그런 전통소설의 정 반대편쯤에 있는 작품이다. 목표는 현실의 반영 혹은 재현이 아니라 기존 소설 전체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평균적인 소설에서 기대되는 대부분의 관습과 규약을 무너뜨렸다.

내러티브가 실종돼 있고, 인물이 실재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홍학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 ‘나’의 머릿속 분열된 자아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통사규칙마저 위반한 언어실험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소설을 붙들게 되는 것은 바로 그 규칙과 관습의 위반에서 오는 쾌감 때문이다. 왜 한낱 소설 따위도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소설은 그런 반문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싱거운 국물 말고 건더기도 있다. 소설 작법에 대한 ‘담론’(그러니까 예술론)도 나오고, 영화 ‘영향 아래 있는 여자’ 같은 문화코드도 들어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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