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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세계를 홀린 디자인 명작 650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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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디자인의 예술
도미니크 포레스트 외 6인 지음, 문경자·이원경·임명주 옮김,
미메시스
928쪽, 5만8000원

너무나 일상적인 용어인데도 ‘디자인’의 정의는 쉽지 않다. 사전적 설명에 따르면 디자인은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다. 말의 뿌리를 쫓아가면 영국 산업혁명에 닿게 된다. 19세기 중반 장인의 손으로 한땀 한땀 빚어낸 공예제품 대신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이 각 가정에 자리 잡을 때였다. 신소재도 개발되면서 제품 생산이 전에 없이 빨라졌다. 비슷비슷한 제품들 사이에서 어떻게 부가가치를 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디자이너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운송수단에서부터 기술 분야와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맹위를 떨치게 됐다.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발전한 산업 디자인의 역사를 다룬다.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의 학예 책임자인 도미니크 포레스트를 비롯해 6명의 전문가가 미국·이탈리아·영국 등 주요 산업 국가의 디자인을 소개한다.

미국은 산업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탄생시켜 전 세계로 파급시킨 일등공신이다. 전후 미국은 자동차, 비행기 등 운송 수단 디자인뿐 아니라 각종 가정용 기계로 들어찬 ‘꿈의 가정’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론 아라드의 안락의자(1991년), 조너선 아이브의 아이맥G3(1998년), 벤츠의 300SL(1957년),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주전자(1985년). [사진 미메시스]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론 아라드의 안락의자(1991년), 조너선 아이브의 아이맥G3(1998년), 벤츠의 300SL(1957년),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주전자(1985년). [사진 미메시스]

저자는 "전후 미국은 국민의 상당수가 부유해지면서 신식 주택과 자동차, 가정용 기기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표출하려는 매우 세련된 소비 사회가 등장했다”며 "소비재가 핵심을 이루는 풍요한 신세계를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50년대 각종 잡지에는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큼지막한 부엌에서 사는 모습이 총천연색으로 실렸다. 디자인은 가정을 넘어 코카콜라, IBM과 같은 초국가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도구에서 애플을 선두로 한 실리콘 밸리의 전자·정보·통신 분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오랜 수공예 전통과 추운 날씨, 평등의식과 맞물려 발전했다. 모든 사람이 실내 생활에서 아름답고 품질 높은 제품을 즐겨야 한다는 철학이 밑바탕이 됐다. 덴마크·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5개국의 디자인은 사실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디자인 관련 행사를 공동으로 기획하며 차이는 숨기고 세련된 ‘스칸디나비아적’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수록된 650장의 사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디자인계의 고전이 된 제품 사진부터 당시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광고 사진까지 시선을 붙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자동차 디자인 혁명 이끈 독일 국민차 ‘딱정벌레’

1950년대는 서독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였다. 책에 따르면 50년에 21만6108명이었던 자동차 신규 구매자가 59년에는 150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를 중산층에 보급하면서 자동차 디자인 분야가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외에서 배출가스 조작으로 논란을 일으킨 폴크스바겐은 30년대 독일 최초의 소형차인 ‘비틀’을 만들었다. 나치 정권이 주도한 프로젝트였다. 국민 여가와 관광 증진을 담당했던 ‘즐거움의 힘(KdF)’이라는 기관의 의뢰로 자동차 엔지니어인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만들었다. 미국 포드 자동차의 ‘모델 T’에 대항한 보급형 차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자동차 공장은 군사 시설로 쓰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서야 비틀은 ‘딱정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국민차로 자리매김한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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