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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말이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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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민식 고려대 국문학과 4학년

최민식
고려대 국문학과 4학년

내 이름은 로시난테. 주인님이 사흘 밤낮을 고민한 끝에 지어주신 이름이지. ‘전에는 비쩍 말랐지만 이젠 가장 훌륭한 말’이라는 뜻이야.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어. 좁은 마구간에서 벗어나 주인님과 함께 모험을 떠났지. 조금은 엉뚱한 모험이었지만 덕분에 난 유명해졌어. 어때 이만하면 멋진 마생(馬生) 아닌가? 오늘은 우리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유라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

유라야. 넌 우리와 달리 원하는 건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지. 우린 이상을 좇기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지만 넌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어. 남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한 좋은 말, 금메달, 명문대 학생증 등은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대기만 하면 가질 수 있었지. 네게 불가능한 꿈 따윈 없었어. 돈도 실력이라고, 억울하면 부모를 원망하라고 했던 넌 이러한 특권이 너무나 당연했겠지. 너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는 이 모든 걸 허락하는 권능이자 축복이라 믿었고, 한평생 여기에 기대 살았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래서 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나와 주인님의 모험담을 읽는 걸 이해하지 못할 거야.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 아마도 넌 양떼와 풍차를 향해 돌진한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쏘아붙이겠지. 하지만 우린 우리가 누군지 스스로 결정했어. 너처럼 가문과 핏줄에 의지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내심 그 용기가 부러웠던 거야.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려간 우리의 자유와 결단을 그들도 원하고 있기 때문이야.

필시 넌 몇 번이고 부서지면서도 잡을 수 없는 꿈을 향해 달리는 우리가 불쾌했을 거야. 지금껏 너희 가문이 휘둘러온 횡포와 폭력에 맞선 사람들이 떠올랐을 테니까. 넌 그들이 가소롭고 귀찮았겠지. 하지만 그들에 의해 발목이 붙잡힌 지금 너의 심정이 궁금하다. 이제 사람들은 너의 ‘달그닥 훅’에 맞춰 나가떨어지진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다. 유라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니. 멋진 말, 비싼 차, 좋은 집의 주인이 아니라 인간 정유라로서 말이야. 사람은 무엇을 가지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행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확립해 나가는 거야. 여기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넌 영원히 사람들이 만든 증오와 저주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명심해 지금 널 구원할 수 있는 건 네 핏줄도 재산도 아닌 오직 너밖에 없단 걸.

최 민 식
고려대 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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