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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고 철저한 미국 금융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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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특파원

이상렬
뉴욕특파원

트럼프가 미디어의 관심을 독차지한 미국에서 최근 두 가지 뉴스가 내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월가의 대표적 투자은행 JP모건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금융당국으로부터 2억6400만 달러(약 3100억원)의 벌금을 두드려 맞은 일이다. JP모건은 2006~2013년 중국 고위층 자녀 약 100명을 인턴이나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했다. 정상적인 경로로는 채용되기 어려운 자격 미달자가 많았다. 전형적인 ‘금수저 특채’였다. 물론 공짜가 아니었다. JP모건은 그 대가로 사업을 따내거나 유지해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 SEC의 판단이다. 미 금융당국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 특채 제도가 뇌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JP모건으로선 막대한 벌금보다 평판의 훼손이 더 뼈아플 것이다.

두 번째는 월가의 또 다른 대형은행 웰스파고 이야기다. 통화감독청(OCC)이 웰스파고에 경영 계획 변경, 간부진 고용·해고 등에 앞서 반드시 OCC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승인 대상에는 지점 이전, 보너스 지급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사실상 이 은행 경영 전반에 대한 엄격한 통제인 셈이다. 문제가 된 것은 이른바 유령 계좌 스캔들이다. 웰스파고 직원들이 판매 목표를 달성하려고 2011년부터 고객 정보를 도용해 200만 개의 허위 계좌를 만든 것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웰스파고는 관련 직원 5000여 명을 해고했고, 1억85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전 경영진 2명은 주식 보상금 6000만 달러를 몰수당했다. 하지만 OCC는 이 정도론 처벌이 충분치 않다고 본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미국 금융감독의 지독함과 철저함이다. JP모건의 금수저 특채 스캔들이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이 2013년. 벌금 부과까지 3년이 걸렸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SEC는 조사를 계속한다고 밝혔다. 다른 대형 은행들이 떨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웰스파고의 경우 스캔들 자체가 이례적이라곤 해도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에선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제재다. 더구나 만족스러운 수준이 될 때까지 당국의 경영 간섭은 계속될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은행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면 우리 금융당국은 어떻게 했을까. 사실상 뇌물을 준 거라며 처벌을 가했을까. 고객을 속인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경영 접수에 들어갔을까.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경제가 나 보란 듯 되살아난 비결 중 하나는 미국 금융의 부활이다. 그 이면엔 ‘한번 물면 끝을 보는’ 금융감독이 있다. 그런데도 미국에선 감독당국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 국민을 좌절시켰던 외환위기 발생 20년, 우리는 금융의 일류화를 외쳤지만 실패했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는 사라진 꿈이 됐다. 관치금융이 외환위기 전보다 심하다는 말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정작 부실과 비리를 도려내는 데는 무르다. 독하고 철저한, 그래서 시장과 국민을 보호하는 심판관을 우리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이 상 렬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