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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상업영화 도전하는 독립영화 감독들③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

중앙일보

입력

영화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

영화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

‘가려진 시간’은 실종됐던 한 소년이 며칠 뒤 훌쩍 자란 성인으로 돌아온다는, 특이한 설정의 영화다. 돌아온 소년과 한 소녀의 특별한 교감을 다루는 이 영화는 판타지 멜로를 표방하지만, 소년을 하루아침에 어른으로 만든 사건에 궁금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스릴러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영화의 무대는 남해의 외딴 섬이다. 터널 공사를 위한 동굴 발파 현장을 구경하러 열세 살 또래 아이들이 산에 오른다. 동굴을 구경하고 나온 아이들 중 여자아이 수린(신은수)을 제외한 남자아이 셋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하필 혼자 돌아온 수린의 의붓아버지(김희원)가 터널 공사 관리자여서, 사람들은 ‘사고가 있었는데 감추는 게 아니냐’며 부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던 와중에 30대 남자(강동원)가 나타나, 자기가 사라진 소년 중 한 명인 성민이라 주장한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이는 독립 장편 ‘잉투기’(2013)로 주목 받았던 엄태화 감독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잉여’들의 싸움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의 서글픈 현실을 담아냈던 그가 판타지에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경남 남해와 거제도, 전남 완도 등을 돌며 영화를 촬영 중인 그는 “원래 현실적인 이야기보다 판타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며 말문을 뗐다.

‘잉투기’ 같은 현실적인 영화를 찍고 나니, 판타지에 대한 회귀 본능이 커지더군요. 이 영화는 호러 판타지로 분류됐던 전작 단편영화 ‘숲’(2012)에 가까운 영화예요.

엄 감독는 “원래 성인 남자와 소녀가 등장하는 스릴러적인 이야기를 쓰려 했지만, 지난해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로맨스에 가까운 밝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는 판타지이지만, 아이들의 실종을 둘러싼 어른들의 태도와 미디어의 반응 등 정말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현실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서 열세 살 성민 역은 ‘사도’(9월 16일 개봉, 이준익 감독)에서 어린 정조를 연기한 이효제가, 어른 성민 역은 강동원이 맡았다. 엄 감독은 강동원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어른이면서도 소년의 느낌이 남아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어른 성민은 강동원이 지금껏 맡아 온 역할과는 전혀 다릅니다. 갑자기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 때문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죠. 그걸 오롯이 내면 연기로 표현하며 극을 끌고 가야 하는 부담이 컸을 텐데, 오랜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해줬습니다.”

어른 성민과의 교감을 통해 성장해 가는 외로운 소녀 수린 역은 연기 경험이 전무한, 연예 기획사 JYP의 연습생 신은수가 맡았다. 엄 감독은 “맑은 이미지에, 타고난 연기력도 있어 만장일치로 캐스팅했다”며 “다른 배우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고 말했다.

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의 말도 믿기 힘든 삭막한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 답은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상의 소중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런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을 영화에 끌고 온 겁니다.

*이 기사는 매거진M 137호 (2015.11.06-2015.11.12)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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