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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소설, 영화로 태어나다. 영화계와 출판게에 부는 스크린셀러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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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설이 영화로 탄생했다. 영화가 소설을 뿌리 삼아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책 속의 활자가 화면의 영상 언어로 재해석됐고, 원작과 다른 묘미가 영화를 통해 구현됐다. 소설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최근에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상당하다. 또 소설 원작의 영화가 개봉한 후 원작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이른바 스크린셀러 열풍이다. 스크린셀러(Screenseller)는 영화를 의미하는 스크린(Screen)과 베스트셀러(Bestseller)의 합성어로, 영화의 흥행으로 다시 주목받은 원작 소설을 일컫는다. 최근 서점가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스크린셀러의 면면을 짚어보고, 향후 어떤 소설이 영화로 탄생할지 살펴봤다.

9월 18일 개봉한 ‘메이즈 러너’(웨스 볼 감독)는 관객 278만 명(10월 28일 기준)을 모았다. 비수기로 분류되는 9월 극장가에서 이례적인 흥행이다. ‘메이즈 러너’는 유명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것도 아니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출연한 것도 아니지만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개봉 첫 날 스크린 점유율 11%에서 개봉 3일차에는 13.3%, 개봉 7일차에는 14.3%로 꾸준히 증가했다. ‘메이즈 러너’가 흥행하자 대중의 관심이 원작으로 쏠렸다. 2012년 7월 첫 출간 된 미국 작가 제임스 대시너의 『메이즈 러너』의 초판 당시 판매고는 3000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으로 원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었고, 결국 판매고 급상승으로 이어졌다. 출판사 문학수첩 김수연 팀장은 “영화 개봉 전의 판매량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적었지만, 영화가 흥행하자 시리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데스 큐어』를 합해 누적 판매고가 15만 부에 달한다”며 “영화 흥행이 원작을 다시 조명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 작가 길리언 플린이 쓴 『나를 찾아줘』 역시 동명 영화 ‘나를 찾아줘’(10월 23일 개봉,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후광 효과를 누렸다. 스릴러 명장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이 들리자 원작 판매고가 출렁거렸다. 지난해 4월 첫 출간 이후 3개월 동안 1만 부가 팔린 반면 영화 개봉 한 달 전인 9월 말부터 현재까지(10월 28일 기준) 한 달간 1만 부가 팔렸다.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원작으로 향한 셈이다. 출판사 푸른숲 문창운 팀장은 “소설은 출간된 이후 판매 사이클이 있다. 첫 출간 이후 3개월이 지나면 판매고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의 경우 영화 개봉 2주 전부터 판매가 급격히 늘어났다. 영화에 대한 기대가 원작 판매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출판사 입장에서는 소설 원작 영화의 개봉이 호재가 된 셈이다. 출판사가 영화화가 확정된 소설의 출간을 앞두고 ‘전격 영화화’ ‘○○○ 감독 연출, ○○○ 주연 확정’ 등의 문구를 표지에 활용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어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질까

이제 소설에 뿌리를 둔 영화는 익숙하다. 최근에도 소설 원작 영화가 기획된다는 소식이 여럿 들렸다.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아가씨’는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가 쓴 『핑거스미스』를 바탕으로 했다. 『핑거스미스』는 엄격한 도덕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레즈비언이라는 도발적 소재, 이야기의 정교한 구성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 등으로 호평을 받은 소설이다. 지난 9월 여주인공 캐스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올드보이’(2003, 박찬욱 감독)의 용필름과 이 영화를 공동 제작하는 모호필름의 정원조 프로듀서는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이르면 다음 해 초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가 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도 영화화에 착수했다. 이 소설은 30년 전으로 돌아가 첫사랑을 만난다는 기발한 설정을 토대로 두 남녀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사랑에 대한 철학이 기욤 뮈소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펼쳐진다. 제작사 수필름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확보해 다음 해 개봉 예정으로 현재 시나리오를 개발 중이다. 수필름 민진수 대표는 “인생에 대한 감동이 묻어 있는 로맨스영화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욤 뮈소의 소설이 아시아에 영화 판권으로 팔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도 영화화될 예정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행복’(2007)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아들이 많은 집의 외딸)로 태어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고종의 죽음 이후 일본으로 끌려 간 뒤 냉대와 감시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픽션화한 부분이 많다. 기구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에게 초점을 맞췄고, 원작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덕혜옹주’는 본격적인 캐스팅에 돌입했고, 내년 2월 말 첫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중에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많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허삼관 매혈기』도 영화 ‘허삼관’으로 만들어졌다. ‘허삼관’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허삼관(하정우) 부부와 세 아들의 이야기를 감동과 유머로 그린 작품. 하정우가 연출과 주연을 맡고, 하지원, 전혜진, 성동일, 윤은혜 등이 호흡을 맞췄다. 9월 28일 촬영을 마치고, 내년 개봉을 목표로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그밖에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심장을 쏴라’(문제용 감독)도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민기와 여진구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운명에 맞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두 청춘의 치열한 삶을 그려낸 작품으로, 원작의 설정과 정서를 계승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김성호 감독)은 미국 작가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개봉 대기 중이다. 도망간 아빠로 인해 집을 잃게 된 소녀가 길거리에 나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이레 등이 호흡을 맞췄다. 김민영 작가의 소설 『팔란티어』도 동명 영화(이재규 감독)로 만들어진다. 『팔란티어』는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살인 사건 용의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릴러로, 의사 출신 작가의 사실적 묘사와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은 영화의 마르지 않는 샘

상업영화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르다. 영화 제작자가 아이템, 즉 영화의 소재를 소설에서 찾는 데 몰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은 영화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제작한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는 “영화는 소설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 특히 독자들에게 검증된 작품을 영화로 만들 경우 잠재된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제작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외국 소설일 경우 영화화가 쉽지 않다. 원작의 정서와 설정 등 국내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민진수 대표는 “외국 소설의 영화 판권을 확보했다고 해도 영화로 못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다. 원작의 배경, 설정을 국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게 변주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소설에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성의 힘도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족, 사랑 등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중국의 소시민 주인공을 내세워 아버지의 희생,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룬 『허삼관 매혈기』가 1960년대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 되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소설의 장르적 재미를 영화로 풀어내는 데 제격인 경우도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출생의 비밀, 유산 상속의 음모 등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낸 『핑거스미스』가 2014년에 새롭게 변주되는 까닭이다. 출판사 문학수첩의 김수연 팀장은 “영화 제작사에서 소설 판권을 의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특히 소설 원작 영화가 개봉을 앞두면 소설의 인기도 상승한다. 결국 영화는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고, 소설은 영화의 개봉에 맞춰 다시 관심을 받게 돼 소설과 영화는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영화화 된 베스트셀러들*

*이 기사는 매거진M 87호(2014.11.07-2014.11.13)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용진 기자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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