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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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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달의 심사평

이태 전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심사평을 쓴 적이 있다.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었던 그 때의 우울함이 오버랩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을 건너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 분노와 폭력보다는 풍자와 해학, 건전한 참여, 공공의식 등이 그렇다. 이달의 응모작을 펼치기 전 솔직히 이번에도 정제되지 않은, 시사성을 드러낸 작품들이 많으리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감정을 절제하고 작품의 완성도에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어 흐뭇했다.

얼어붙은 저수지, 한마리 새
출구 못찾는 우리시대 투영

이달의 장원으로 이성목의 ‘깊이를 더하다’를 선한다. 저수지 얼음에 박혀 있는 한 마리 새를 통해 출구를 쉽게 찾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그려낸다. 작은 새의 주검은 ‘계절이 막다른 곳’인 살풍경한 겨울의 선명한 방점으로 읽힌다. 마디와 장을 엮는 솜씨도 좋고 종장처리도 짜임새가 있다. 특히 얼음이 언 저수지를 ‘목숨을 헹구어 낼 커다란 대야 하나’로 표현한 것은 절묘하다.

차상은 김태경의 ‘독방’이 차지했다. 혼자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흡사 독방을 견디는 수인인 양 처연하다. 각각의 수마다 등장하는 ‘혀’는 감각을 곧추세운 다른 이미지들로 그려진다. 열망하는 어떤 대상, 그 대상을 향해가는 힘겨운 작업, 고단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써 나가는 가상한 노력, 그리고 아직은 미완인 작품에 대한 연민 등을 그려가는 과정이 참신하다. 역시 미래가 기대된다.

차하엔 박훈의 ‘주름을 읽다’를 뽑는다. 마디를 엮는 솜씨가 안정감이 있고 안으로 다독인 서정의 결도 믿음이 간다. 그러나 장점에도 불구하고 발상과 시제가 너무 상투적인 게 흠결로 지적된다.

11월은 결실을 갈무리 하는 달이다. 이소우·고운담·임지연·안천근 등의 작품이 끝까지 눈길을 머물게 했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이달균·박명숙(대표집필 이달균)

초대시조

가을 행락객이 떠나고 난 뒤의 유원지는 얼마나 쓸쓸한가? 문득 텅 비어 잡풀만 무성한 풍경이 시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순 적벽’에는 ‘이서적벽, 물염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등 네 곳의 이름이 오른다. 이 중 ‘이서적벽’은 동복댐 수원지에 갇힌 지 30년 만에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우선 바람의 이름을 닮은 삿갓 김병연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이곳에서 연분을 지으며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예측하지 못한 늦추위가 봄의 출산을 알리는 ‘입덧’ 위에 ‘눈꽃’을 얹으면서 ‘덧난’ 시간을 살게 한다. 봄눈이 내리면서 사위는 어둑해지고 이로써 혼미해진 현존의 한 때는 ‘얕은 잠에 묻힌 적벽’과 같은 처지가 된다. 결국 미몽으로 시작된 하루를 ‘하늘이 훤히 뵈는 허름한 술집에서’ 보내게 되는데,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일용직 노동자의 하소연처럼 일기에 민감한 것이 몸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는 이들의 처지이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미몽의 시간에 일감을 찾아보지만, 날씨는 아예 그 손길을 거두게 만든다.

젊고 의욕적인 가슴을 내면에 묻어둔 채 싸늘한 바람과 함께 봄눈이 내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시(漢詩)에서 김삿갓 등이 보여준 방식과 닮아있다. ‘화순 적벽’은 가난한 선비들이 찾았던 곳이니 그들의 시 대다수가 방외인의 날선 비판정신을 보여주거나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서글픔을 노래하는 것들이었다. 이처럼 ‘화순 적벽’에서 역사적 현실을 겹쳐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염창권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04513) 또는 e메일(choi.sohyeo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e메일로 응모할 때도 이름·연락처를 밝혀야 합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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