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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친박들 탄핵 막으려 매일 작전회의…서청원 즉각 은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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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 탈당 1호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정현 대표와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중진들이 요즘 매일 회의를 열고 당내의 탄핵·탈당 움직임을 막느라 혈안이 돼 있다. 당신들이 대표·원내대표 경선과 4·13 총선 때 했던 장난질을 모를 줄 아는가. 초·재선들 줄 세우기 하고 비례대표들 밥 먹이며 ‘오더(명령)’ 내린 것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서 의원은 정계를 은퇴하고 최고위원들도 내려오라. 작전회의도 당장 중단하라.” 새누리당을 탈당해 비박계의 ‘엑소더스’에 물꼬를 튼 남경필 경기지사는 친박계에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경기도청 지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다. 그는 “친박·친문·국민의당을 뛰어넘는 ‘제4지대’를 만들어 정계를 개편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새누리당을 나와 ‘제4지대’에 합류할 의원들이 적지 않다.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2004년 박 대통령(당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에 출마하자, 같은 개혁 성향인 원희룡·정병국 의원과 ‘남·원·정’ 트리오를 이뤄 박 대통령의 당선을 적극 지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대표가 된 뒤 보여준 인식이 유신 시절에 머물러 있어, 결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남경필 지사는 “탈당 결심을 주변에 털어놨더니 가족들조차 반대하지 않고 격려하더라. 이것이 민심 아니겠느냐. 새누리당이 이를 직시하지 않으면 곧바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남경필 지사는 “탈당 결심을 주변에 털어놨더니 가족들조차 반대하지 않고 격려하더라. 이것이 민심 아니겠느냐. 새누리당이 이를 직시하지 않으면 곧바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남 지사와 동반 탈당한 새누리당 현역 의원은 아직은 김용태 의원 한 명뿐이다. 좀 성급하지 않았나.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일주일간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21일 탈당을 결심했다. 박 대통령을 국정 농단 범죄의 피의자로 못 박은 검찰 수사 발표가 난 다음 날이다. 수사 결과도 참담했지만 그에 대한 대통령과 친박 지도부의 반응을 보고 새누리당 안에서 개혁을 해 당다운 당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당 창당을 계획하고 탈당한 것인가.
“그럴 시간이 전혀 없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민심에 불을 지르고만 있을까. 다른 의도, 이를테면 폭력시위를 부추겨 보수세력 집결을 유도하려는 시나리오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만큼 탈당파를 비롯한 국회 내 개혁세력이 하루라도 빨리 탄핵에 착수해야 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탄핵 동참 여부를 밝혀야 한다. 안 그러면 민심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김무성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은 어떻게 보나.
“그 선언이 나온 직후 김 전 대표에게 전화해 ‘형님 왜 이렇게 자꾸 멋있어지는 거요’ 했다. ‘내가 잘할게’라고 하더라. 곧 소주 한잔 하기로 했다. 대통령 꿈꿔온 사람이 그 꿈을 접고 보수 개혁에 매진하겠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한다.”
탈당 전에 비박계와 상의했나.
“유승민·김무성·김영우·이학재·오신환 의원 등을 따로 만났다. 난 (탈당) 결심이 섰다고 밝혔지만 동반 탈당을 요구하지는 않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자 다들 ‘고민 중이다’ ‘이해한다’고 하더라.”
‘남원정’ 멤버인 정병국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어떤 입장인가?
“개혁은 역시 ‘남원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 의원에게 전화해 ‘형, 제주도 안 갈래?’ 했더니 ‘안 그래도 가려 했다’고 하더라. 원 지사도 ‘당연히 만나야지’ 해서 제주로 내려가 셋이 저녁을 했다. 정 의원은 (탈당에) 적극 동의하되 시기는 유동적이란 입장이었고, 원 지사는 일단 당내에서 개혁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큰 틀에선 다들 같은 마음임을 확인했다.”
친박계는 어떻게 나올까.
“이정현 대표가 내년 1월 21일 전당대회 카드를 들고 나온 의도는 숫자로 밀어붙여 당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친박은 어떡하면 자신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 하지만 민심과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내가 서청원 의원의 협박 사실을 폭로한 이유다.”
서 의원이 어떻게 협박하던가.
“서 의원이 나를 만나거나 전화를 해 오거나, 친박들 작전회의 도중 나와 조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게 모욕적인 얘기를 한다. 검찰이 잘 쓰는 수사 기법처럼 처음엔 겁주고 나중엔 어르는 식이었다. 딱 조폭들 하는 방식이더라. 더 기가 막힌 건 그 협박한 내용이 다음 날 당 지도부 공식 입장으로 발표되는 거다. 행동대 격인 최고위원들은 ‘남경필, 너는 세습받은 금수저일 뿐이다. 지지율이 몇 %나 되느냐’는 식으로 공격하고, 보스는 뒤에서 조율하는 식이었다. (다른 친박들은?) 내게 전화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서 대표(서 의원)님이 대장이잖아. 남 지사가 따라줘야지’라고 했다. 이런 조폭문화를 이끌고 있는 이가 서 의원이다. 정계 은퇴해야 한다. 마음이 약할 수밖에 없는 초·재선 의원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을 것이다. 당 대표 경선 때 늘 그런 식으로 해왔다. 탄핵 때는 더 극악스럽게 몰아칠 것이다.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했는데 무산되면 친박들에겐 최고의 시나리오 아닌가.”
2004년엔 박 대통령(당시 의원)이 당 대표가 되도록 밀었는데.
“맞다. 박 대통령이 대표에 오른 뒤 내게 ‘비서실장 해달라’고 하더라. 나는 ‘개기는(반항하는) 스타일이라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고사했다. 대신 진영 의원을 소개해줬다. 나는 당시 박 대표가 보면 볼수록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정리하고 가시죠’라고 했더니 엄청나게 분노하더라. ‘장학회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는 문건이 나온 여의도연구소에선 당시 박형준 부소장이 물러나기까지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 대표의 관계는 어땠나.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일 때였다. 한나라당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전쟁에 들어갔다. 이어 박근혜·김덕룡과 천정배·이부영이 여야 2+2 회담을 열어 물밑 타협을 추진했다. 마지막 쟁점으로 ‘고무찬양죄’ 조항 존속 여부만 남았다. 열린우리당이 타협안을 냈는데 박근혜 대표만 끝까지 반대했다. 장기간 점거농성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탈진한 상황에서 전쟁이 재개될 판이라 난감했다. 그런데 내가 박 대표 하는 말을 들어보니 김기춘 의원의 말과 비슷하더라.”
어떻게 했나.
“김기춘 의원을 찾아가 ‘박 대표에게 이제 그만 합의해 주라고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의원은 ‘박 대표가 내게 물어오면 그렇게 답해주겠다’고 하더라. 다음 날 합의 시한이 다가오는데도 박 대표는 요지부동이었다. 속이 타들어가는데 갑자기 박 대표가 안봉근 보좌관에게 ‘김기춘 의원님 모셔오라’고 지시하더라.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김 의원이 와서는 내가 부탁한 것과는 반대로 ‘국보법은 자구 하나도 바꾸면 안 된다’고 하더라. 박 대표도 ‘그럼요’라며 맞장구쳐 두 사람이 완전 감정이입이 됐다.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반전이라면?
“김 의원이 ‘에밀레종을 만들기 위해 자식을 희생시킨 장인의 마음으로 돌아갈 때’라며 ‘국보법을 지키기 위해선 아이(고무찬양 조항)는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러자 박 대표가 결국 타협안에 손을 들어주더라.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국회를 떠나 경기도지사가 된 뒤로는 박 대통령과 만난 적 없나.
“개인적으로는 만난 적 없고, 대통령과 광역지자체장들과의 집단회동에서 서너 차례 보긴 했다. 대통령이 내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시더라. (남 지사의 슬로건인) 공유경제는 잘되세요?’ 라고 묻더라. ‘규제가 너무 많아 못해 먹겠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더라. 얼마 뒤 규제가 풀렸다.”
남 지사의 탈당으로 ‘제3지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국민의당과 함께할 생각은 있나.
“ ‘제3지대’를 대표한다는 국민의당은 문제가 많다. 전근대적 인물들이 섞여 있다. 안철수 전 대표도 도대체 어떤 분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선 새 시대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제4지대’를 만들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보완한 수준인 제3의 길을 넘어 ‘공유’를 추구하는 ‘제4의 길’이 모토다.”
그러면 대선전은 친박·친문·국민의당에 남 지사가 이끄는 ‘제4지대’ 신당이 추가된 4파전이 되나.
“끝까지 그런 식으로는 가지 않고, 개혁 성향 정당들이 협력하는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게 내 구상의 요체다. 그 정계 개편에 ‘제4지대’ 세력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따르는 의원들이 많을까?) 자신 있다.”
여권 잠룡이지만 지지율은 높지 않다.
“작은 권력을 나눠본 사람이 큰 권력도 나눈다. 나는 모자란 사람이다. 주변의 도움 없이는 홀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는. 이런 인식이 지금 대권을 노리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나는 경기도에서 그런 인식을 실천에 옮겨 성과를 낸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수평적 리더십과 협치가 절실한 이 나라 대통령 직에 도전하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성과를 냈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진 못한다. 공유라는 시대적 가치를 접목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에서 ‘공유정치’를 시작했다. 야당과의 연정이 그것이다. 이러면 최순실이 나올 수 없다. 경제에도 공유를 접목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오스트롬의 공유지이론을 원용한 ‘공유경제’가 경기도에서 꽃피고 있다. 경기도가 돈을 대서 사업하기 좋은 플랫폼을 깔아 주면 그 위에 중소기업들이 들어와 비즈니스를 하는 모델이다. 수입품 감자칩이 3300원인데 그보다 더 맛있는 경기도산 중소기업 제품이 2800원에 나와 있다. 이렇게 해서 기업이 돈을 벌면 일자리와 세금이 늘어 도민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런 ‘공유경제’ 모델로 성공을 거둔 게 판교 테크노밸리다. 지난해 매출만 70조원이다. 세금이 수천억원 걷히고, 일자리도 7만 개나 창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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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될 경우에도 야당에 내각의 절반을 줄 건가?
“야당이 의석수가 더 많으니 절반보다 더 줘야 할 것이다. 다만 대선 뒤 국회 구성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다. 그때 의석수에 따라 야당에 내각을 할당하겠다.”
일각에선 남 지사를 ‘오렌지’라고 지적한다.
“요즘은 ‘오렌지’ 대신 ‘금수저’란 말을 쓴다. 내가 금수저인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금수저는 무지하게 크다. 그걸로 밥을 퍼서 자신과 가족들만 먹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금수저 출신으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일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내 롤모델이다.”

남경필은

대선주자로서의 지지율은 10위권 수준이지만 모병제와 사교육 전면 철폐, 청와대·국회 세종시 이전 및 전시작전권 환수와 핵무장 준비론 등 도발적 공약으로 눈길을 모으는 여권의 개혁파 정치인이다. 집안이 좋다. 경남여객 대표와 경인일보 사주 및 14~15대 의원을 지낸 고(故) 남평우씨의 장남이다. 1965년 수원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거쳐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98년 부친이 의원 재직 중 별세하자 33세의 나이로 보궐선거에 나와 지역구(수원 팔달)를 계승했다. 이후 내리 5선을 기록하며 한나라당 대변인·원내수석부대표·최고위원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국회 입성 직후부터 원희룡·정병국·김부겸·김영춘 등 개혁 성향 의원들과 ‘미래연대’ 모임을 만들어 교유했다. 이들은 모두 여야의 대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요청으로 출마해 경기도 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지사에 취임한 뒤에도 사저에서 살면서 1만㎡(3000여 평)의 도지사 공관과 터를 도민에게 돌려줬다. 이곳은 매주 음악회가 열리고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오는 장소로 바뀌었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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