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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내각제 좋다, 그렇다면 어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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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고정애
런던특파원

퀴즈다. 다음 중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황금마차를 타지 않은 이는? ①버락 오바마 ②앙겔라 메르켈 ③시진핑 ④박근혜

 답은 둘이다. 오바마는 탈 수 있는데 안 탔고 메르켈은 ‘자격’이 안 돼 못 탔다. 서구 자유주의의 보루로 불리는 이에게 가당하기나 한가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총리는 대통령과 달리 국가원수가 아니다.

 최순실 일가 ‘덕분’에 대통령제는 안 되겠다는 이가 적지 않다. 필자도 1인이다. 대안으로 의원내각제가 거론된다. 황금마차 타는 일처럼 일도양단이면 좋은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일종의 스펙트럼이다. 대충 우리 못지않은 인구에 남우세스럽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들만 봐도 그렇다.

 일단 내각제에도 대통령이 있다. 군주가 없다면 말이다. 대통령을 직선으로도(오스트리아), 간선으로도(독일·이탈리아) 뽑는다. 아무래도 직선 대통령에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터키 대통령은 직선으로 뽑히더니 아예 대통령제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권력을 줄 텐가. 제법 준다면 정치언어로 분권형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일 터다.

 ‘과반 정당이 정부를 구성한다’는 원칙도 녹록지 않다. 국민국가 전통이 긴 영국은 대체로 양당제로 수렴하곤 했다. 과반 정당이 만들어지곤 했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복잡다기해진 이해를 담아내기엔 그릇이 작다. 지난해 총선에선 145만 표를 얻은 스코틀랜드국민당이 56석을 얻은 반면 388만 표를 얻은 영국독립당은 2석에 그친 일도 있었다. 표의 등가성도 문제인 게다.

 대개는 종교·이념·지역·이해가 얽힌 다당제다. 주고받기에 의한 연정이 불가피하다. 벨기에는 연정 협상을 하느라 541일이 걸렸다. 사실상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바뀐 스페인은 1년 동안 세 번의 총선을 치를 뻔했다. 효율인가, 그래도 합의인가.

 영국엔 정부직·당직 등 이른바 ‘프런트 벤치’ 의원만 120명이다. 인구가 6500만 명인데 하원 의원이 650명이어서 가능했다. 불신·혐오 대상인 의원이 늘어나는 데 동의하는가.

 30년 전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지도자를 뽑겠다며 광화문광장을 직선제 함성으로 채웠다. 의원에게 투표하지만 실제론 총리를 뽑는 ‘어정쩡한’ 제도에 익숙해질 수 있나.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이런 유의 무수한 질문이 제기될 게다. 최대공약수의 답을 구해야 한다. 50년, 100년은 갈 정체(政體)다. 혜안과 통찰력이 절대적이다. 진정 우주의 기운을 모을 시기란 얘기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