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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8000마리 ‘돼지 아빠’로 살기, 펀드매니저보다 짜릿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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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도헌 농업법인 성우 대표의 이모작

아기돼지를 들고 환하게 웃는 이도헌 대표. 금융맨이던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에 진입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1차 산업의 성장성을 확인한 그는 보장된 임원직을 박차고 나와 2013년 이 돼지농장의 CEO가 됐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아기돼지를 들고 환하게 웃는 이도헌 대표. 금융맨이던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에 진입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1차 산업의 성장성을 확인한 그는 보장된 임원직을 박차고 나와 2013년 이 돼지농장의 CEO가 됐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를 빠져나와 10분 정도 달렸다. 달짝지근한 시골 냄새가 반긴다. 잠깐이다. 돼지농장 초입에 들어서니 도시인에겐 익숙하지 않은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주차를 했지만 차문을 열기가 두려워졌다.

16년간 금융맨, 회사 코스닥 상장도
금융위기 후 한계 느껴 새 일 찾아
세상 변해도 지속되는 건 먹거리
돼지농장 지분 샀다 대표 맡게 돼

“잘 오셨습니다. 냄새가 좀 고약하죠? 그래도 여긴 괜찮은 편이에요.”

이도헌(49) 농업회사법인 성우 대표다. 이 대표는 충남 홍성에 있는 돼지농장의 CEO다. 작업복과 장화, 영락없는 축산업자의 모습이지만 사실 그는 원래 축산업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4년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10년 증권사를 떠나기까지 16년 동안 금융맨으로 살았다. 그것도 매우 성공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그가 20대 후반의 나이로 창업한 회사를 다룬 기사도 있다. <본지 1996년 11월 29일자 B1면>

이도헌(당시 28세) 대표가 1995년 창업한 이강파이낸스를 다룬 중앙일보 96년 11월 29일자 경제섹션 1면. [중앙포토]

이도헌(당시 28세) 대표가 1995년 창업한 이강파이낸스를 다룬 중앙일보 96년 11월 29일자 경제섹션 1면. [중앙포토]

이 회사는 훗날 코스닥에 상장됐다. 남부러울 게 없을 만큼 돈을 벌어 봤고, 인정도 받았다. 43세가 된 2010년, 여전히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쌓아 온 모든 걸 던졌다. 이유는 분명했다. ‘안주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금융업에서 1차 산업,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무엇보다 금융업의 한계를 봤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지나간 뒤 다시 맑아지는 소나기 같았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끝을 알 수 없는 부슬비 같았다. 글로벌 저성장과 가계부채 등을 감안하면 장기 불황이 불가피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40대 초반의 나이를 감안하면 과거를 던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물론 나도 무서웠다. 막상 사표를 내고 짐을 정리하고 보니 갈 곳이 없더라. 쉬면서 뭘 할 것인지 천천히 생각해 봤다. 크게는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 뭔가 쌓이는 일을 하는 것, 기왕이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 세 가지더라. 내게 익숙한 모든 것을 배제했다. 금융은 물론 정보통신기술(ICT)까지. 그리고 세상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가치가 없을까 고민해 봤다. 결국 답은 ‘먹거리’였다. 여기까지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움직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제야 알았다. 서해의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바다가 그렇게 넓은지. 그 당연한 걸 모르고 살았던 거다.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투자증권 재직 시절 베트남 증권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웃고 있는 이 대표(오른쪽). [중앙포토]

한국투자증권 재직 시절 베트남 증권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웃고 있는 이 대표(오른쪽). [중앙포토]

맥주파에게 ‘치맥(치킨과 맥주)’이 진리라면 소주파에겐 ‘삼소(삼겹살과 소주)’가 진리다. 삼겹살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술안주’ 1위(한국갤럽)다. 입맛이 다양해지면서 요즘은 항정살·갈매기살 등 다른 부위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1985년 8.4㎏이었던 한국인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해마다 늘어 2015년 22.5㎏이 됐다. 가계소득 증가와 특유의 돼지고기 사랑이 맞물린 결과다. 먹을 땐 마냥 좋지만 키우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소나 닭에 비해 돼지는 먹는 양이 남다르다. 분뇨 처리 또한 쉽지 않다. 악취는 말할 것도 없고, 열악한 근로 여건에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 역시 고민거리다.

양돈 일은 고되기로 유명하다. 왜 돼지인가?
“그래서 선택한 거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진입 장벽이 낮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의미다. 나름의 원칙에 따라 1차산업을 분류해 봤다.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건 돼지농장을 포함해 양식·시설원예·버섯 정도였다. 이 중에 고민 끝에 고른 게 돼지다.”
처음에는 지분 투자만 했는데 어쩌다 경영까지 하게 됐나?
“처음엔 투자 가치 차원에서 접근했다. 돼지는 돈사를 함부로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공급이 안정적이고, 수요는 꾸준히 증가한다. 쉽게 말해 돈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국 곳곳을 돌고, 정보를 수집해 괜찮은 농장을 하나 찾았다. 지분 투자를 하고, 재무 컨설팅 정도 하는 게 내가 생각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2012년 농장 경영이 크게 어려워졌다. 사료 외상값도 주지 못할 처지가 됐고, 월급이 밀리자 직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사회에서 직접 대표를 맡으라는 얘기가 나왔다. 당장은 돼지를 키우는 것보다 경영·재무관리가 더 시급하다는 게 출자자들의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승낙했는데 사실 나로서도 3년 넘게 공부해 큰 투자를 한 것이니 물러설 곳이 없었다.”
어찌 보면 비자발적 귀농인가?
“(웃음)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1차산업의 미래 가치를 본 것이지 직접 농촌에서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으니.”

대표가 된 그에게 가장 시급한 건 현장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일단 농장장의 지적을 받아들여 환기 시설을 뜯어고쳤다. 급한 대로 개인 경비를 끌어다 썼다. 철저한 재무관리와 함께 새 인사 원칙을 세웠다.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농장의 재무 실적을 전 직원에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학자금 지원, 스톡옵션제도 도입했다. 그러자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폭염이 찾아왔을 땐 에어컨 설치라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돼지를 건강하게 잘 키워 출하량을 높이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고 판단했다. 2014년엔 전국적으로 번진 구제역까지 막아냈다. 팀워크의 힘이었다. 2014년 농장은 흑자로 전환했고, 지난해 연말 송년회 때는 목표대로 직원들에게 처음으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현재 이 농장은 약 8000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연 매출 규모는 약 35억원 정도다. 그는 최근 그간의 경험을 담은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를 출간했다.

연말 송년회 분위기기 훈훈했겠다.
“너무 좋았다. 패색이 짙은 경기에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한 이닝 잘 막았더니 타자들이 역전을 시켜 승리투수가 된 기분이랄까? 3년간 직원들이 똘똘 뭉쳐 도와줬다. 이젠 우리 농장 생산성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고, 재무구조도 거의 정상화됐다. 어찌 고맙지 않겠나? 엉겁결에 맡은 돼지농장 대표직을 나도 이젠 사랑하게 됐다. 어느 정도 정상화됐으니 물러날까 고민도 했지만 이제 나도 도시에 사는 게 어색해진 농부가 된 모양이다(웃음). 그도 그렇지만 실은 다른 목표도 생겼다. 일단 ICT를 활용해 한국에 적합한 농장 관리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그걸 왜 직접 하려고 하나?
“농업 전반은 아니고, 축산 농장에서 쓸 수 있는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지금은 환기 시스템만 해도 유럽에서 들여온 게 많다. 그러나 여름에 고온건조하고, 겨울에 저온다습한 유럽과 한국은 기후부터 다르다. 이걸 기계적으로 모방하니 비싼 돈을 주고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농장에 먼저 적용해 보고,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면 다른 농장으로도 전파할 생각이다. 돼지 사육 규모가 세계 최대인 중국은 농장이 대부분 동부 지역에 몰려 있다. 한국과 기후가 비슷하다. 장기적으로 중국에 판매하는 그림까지 그리고 있다.”
귀농을 생각하는 반퇴 세대에게 조언한다면?
“귀농하면 곧바로 자신이 경영자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경영 마인드는 하루아침에 갖춰지지 않는다. 공부가 필요하다. 적성에 맞춰 구직을 하듯 귀농 역시 그렇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니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한다. 또한 지겹게 들었겠지만 마을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국엔 두 개의 다른 공간, 다른 삶이 있다. 농촌과 도시가 그렇다. 미디어와 장바구니 물가로 연결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 경험한 두 공간의 삶은 전혀 다르다. 나는 지금도 가끔 혼란스럽다. 농촌의 경제활동은 여전히 공동체적이다. 계약이 아닌 인간적인 유대가 중요한데, 이건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안 된다.”
그 유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우리 농장 반경 3㎞ 안이 상식이 통하고, 지속 가능한 마을이었으면 좋겠다. 이 마을에 정착한 이상 혹 위기가 와도 우리 마을 공동체는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그러려면 마을 안에 있는 농장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돼지를 통해 다른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가축 분뇨를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바이오가스 플랜트 설치를 계획 중이다. 마을 총회에서 주민들도 만장일치로 찬성했지만 예산 문제로 일단 주춤한 상황이다. 언젠가 꼭 한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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