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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변수 차단, 글로벌 중앙은행들 머리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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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트럼프 탠트럼(tantrum·금융시장 혼란)이 각국 중앙은행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자국 경제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진검 승부다. 트럼프 당선 이후 금리 급등과 통화 약세가 동반 진행하면서 경제 펀더멘탈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미국, 내달 금리인상 기정 사실화
EU·일본은 무제한 통화방출 계속
금융시장 한바탕소용돌이 예고
입장 모호 한국은 진통제만 투여

유럽과 일본은 현재의 무제한 통화 방출을 계속할 방침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1일(현지시간) 유럽의회에서 "2%에 가까운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재 수준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유로존 인플레는 0.5%에 그쳐 목표치와는 거리가 멀고 고용은 여전히 부진하다. ECB는 현재 매달 850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푼다. 로이터통신은 ECB가 다음달 통화정책회의에서 내년 3월 끝나는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연장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ECB의 결심을 재촉한 것은 트럼프 탠트럼이다. 미국의 국채금리 급등이 유럽으로 전이되면서 경기 회복을 위해 ECB가 필사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는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17일 고정금리로 중단기(만기 1~5년)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파격적인 대책을 내놨다. 미국 금리 상승세가 일본열도로 넘어오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22일 의회에서 “적극적인 금융완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일본의 움직임은 미국과 대조적이다. 미국 시장은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마침내 100%에 달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미국과 유럽·일본의 금리 격차는 더 벌어진다. 글로벌 투자 자금이 한바탕 소용돌이칠 개연성이 높아진다.

신흥시장에선 멕시코의 움직임이 가장 기민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트럼프의 핵심 공약이 멕시코의 경제 기반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NAFTA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NAFTA가 와해되면 멕시코 경제도 붕괴 위기로 몰린다. 멕시코 수출에서 미국 비중은 80%에 달한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미 대선 이후 12.3%나 급락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의 선택은 금리 인상이었다. 기준금리를 5.25%로 0.5%포인트 올렸다. 멕시코 경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외화자금이 이탈하는 것을 금리 인상으로 막기 위해서였다. 멕시코 기준금리는 이로써 올 들어 4차례에 걸쳐 2%포인트 올랐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는 CNN에 “(미 대선 영향이) 허리케인 수준이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2%→1.75%)를 택했다. 높아지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시장변동성을 금리 인하로 안정시키겠다는 포석이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금리를 4.75%로 동결했다. 올 들어 6차례에 걸쳐 1.5%포인트를 내린 것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 행진을 멈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미 대선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메시지는 어정쩡하다. 시중금리가 급등하자 지난 21일 1조2700억원의 국채를 사들였다. 하지만 기준금리는 1.25%에서 5개월째 묶여있다. 시중에선 경기 부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방은 않고 진통제만 투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국 중앙은행이 자기네 사정과 논리에 맞춰 금리를 바꾸거나 동결하는데 비해 한은은 금리를 내릴 것인지, 올릴 것인지에 대한 신호와 논리가 빈약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통화정책 여력이 충분하다”며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필요하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확실히 줘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서울=김태윤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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