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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쓰레기라고 말할 수 있어야 문단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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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근 코믹 조폭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출간한 소설가 천명관씨. 후배 소설가 김언수의 장편 『뜨거운 피』로 영화감독에도 도전한다. “김씨가 꼭 연출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코믹 조폭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출간한 소설가 천명관씨. 후배 소설가 김언수의 장편 『뜨거운 피』로 영화감독에도 도전한다. “김씨가 꼭 연출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천명관(52)은 언제나 한국문단의 경계석 같은 존재였다. 문학과 문학 너머, 문학과 영화 사이의 경계 말이다. 고졸 학력에 골프숍 점원, 보험 판매원을 거쳐 10년가량 영화판을 전전하다 늦깎이로 소설가가 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을 점치기 어려운 고삐 풀린 서사로 기존 한국소설 문법에 충격을 가한 2004년 첫 장편 『고래』부터 그랬다.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이 여기까지가 문학이라고 인정하는, 독자들이 이건 소설이 아니라고 등 돌리지 않는, 미학적·대중적 임계점 같은 것이었다.

작년엔 한국 ‘문단 마피아’비판
이번 조폭소설로 근엄한 문학 조롱

비주류 방외지사(方外之士) 같던 그가 세간의 뜨거운 복판으로 들어온 건 지난해 7월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문학판이 좌초 상태에 처했을 때 거침없는 일침을 가하면서다. 한국문학에 문단 마피아가 존재한다며 이른바 문학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 천씨가 다시 대중 앞에 섰다. 4년 만에 새 장편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예담)를 들고서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뭔가 동류항처럼 느껴지는 후배 소설가 김언수(44)의 장편 『뜨거운 피』를 원작으로 영화감독에 도 데뷔한다. 그는 지금까지 영화 ‘총잡이’ ‘이웃집 남자’의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다. ‘고령화 가족’도 그의 소설이 원작이다.

때문에 천씨의 소설 출간은 반드시 문학 내부의 사건이 아니다. 특히 이번 소설은 문학의 경계 너머로 한 발 더 나간 느낌이다. 코믹 조폭소설이라는 프레임 안에 마초 코드(뒤집으면 여혐 코드), 동성애, 영화 시나리오 뺨치는 엄청난 분량의 대사 등을 때려 넣었다. 근엄한 문학판을 지난해 말(言)로 타격했다면 이번에는 작품으로 조롱하는 듯하다. ‘이렇게 써도 소설이거든’ 하면서 말이다. 17일 그를 만났다.

이전 작품들과 사뭇 다르다.
“더 가볍고 장르적으로 썼다. 정통 범죄소설도 아니다. 조폭들이 꾸미는 일에 계속 ‘삑사리’가 나지 않나. 쓰면서 나는 그게 재미있었다. 엉뚱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다 막판에 사건이 모여들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며 폭발하도록 했다.”
영화 시나리오에 살 입힌 소설 같다.
“영화 만들려고 작정하고 썼다. 재미있게 써서 독자들도 그럴 줄 알았는데 내 팬들 중에서도 ‘이게 뭐야’ 욕하는 사람이 있더라.”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있나.
“없다. 문학적 가치도 전혀 없다. 진짜다. 누군가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면 내게 알려달라고 하고 다닌다.”

소설은 올해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그러니까 웹소설이다. ‘의문의 1패’의 예감이 짙어지던 선문답 같은 대화는 지난해 그도 참견했던 문학논쟁 얘기를 꺼내자 육지로 내려왔다. 그는 “신경숙 표절 논란이 그렇게 나라가 발칵 뒤집을 만한 일이었나”라고 반문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문학에 관심이 많았는지, 문학이 그렇게 도덕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쨌든 문학권력을 비판했다.
“획일적인 미학을 강요하는 지금 문단 시스템을 비판한 거다. 다들 문학은 숭고한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대중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뭔가 줄을 서고 눈치를 본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대로 써서 문학상 받아 상금으로 연명하다가 노후가 보장되는 교수 자리를 노린다. 그 결과가 지금 아무도 읽지 않는 한국소설이다.”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학이 고귀하다는 생각, 문학의 권위가 일단 바닥을 쳐야 한다. 문학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심지어 ‘문학은 쓰레기야’라고까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문단은 문학성만을 강조하는 ‘순수 장사’를 해왔다. 이제 그 장사로는 안 된다.”
소설 쓸 때 문학성은 전혀 신경 안 쓰나.
“문학성을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주로 단편을 한 땀 한 땀 공들여 써야 한다. 그런데 뭔가 바깥의 기준에 맞춰 쓴다는 건 힘들지 않나.”
소설이 현실을 실감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 실제 세상에는 별 관심이 없나.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TV를 안 봤다. 쉴드(방어막) 친다고 하지 않나. 뉴스 보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이번 최순실 사태는 뉴스를 안 볼 수가 없더라. 스마트폰만 열어도 온통 그 얘기니….”
현 시국을 어떻게 보나.
“‘하우스 오브 카드’라고 미드를 즐겨 보는데 정말 추악하고 엄청나다. 대통령이 살인도 한다. 대본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작가가 한국에 와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은 정치 스릴러에 오컬트(초자연적 현상)가 합쳐진 형국이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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