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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부모·자녀 함께 영화관서 신작 관람 감상 얘기하며 실제처럼 등급 분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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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 CGV에서 열린 영화 등급분류 캠페인 행사 현장.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마련한 체험형 미디어 교육이다. [사진 영상물등급위원회]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 CGV에서 열린 영화 등급분류 캠페인 행사 현장.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마련한 체험형 미디어 교육이다. [사진 영상물등급위원회]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영상물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영화가 대중적인 문화 콘텐트로 자리 잡으면서 가족 단위 관람객이 늘고 있다. 넘쳐나는 영상물 홍수 속에서 아이들이 유해한 영상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지만 유해성을 따져가며 아이를 지도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올바른 영화 관람을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올바른 영화 관람 캠페인

영등위, 멀티플렉스 3사
학부모·아동·청소년 참가
체험형 미디어교육 앞장

“이건 애니메이션이니까 전체 관람가 아닐까?” “아니지. 대사에 나쁜 말이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12세 이상 관람가가 맞지 않을까.”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의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아이와 부모가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부터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까지 100여 명 남짓의 사람이 방금 본 신작 애니메이션은 어떤 등급이 적절한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등위가 ‘올바른 영화 관람을 위한 등급 분류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한 등급 분류 체험 현장이다. 일일 영화 등급분류위원이 된 학부모와 자녀가 실제로 신작 영화 한 편을 본 뒤 등급 분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알아보는 체험형 미디어 교육이다.

영화 속 다양한 요소 종합 검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등급 분류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지, ‘보호자 동반관람’의 보호자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영화 등급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공세를 펼쳤다.

등급 분류는 영화의 주제나 내용에 포함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 위험 같은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된다. 담배나 술 같은 약물이 자주 등장하는지, 학교 내 폭력이나 따돌림처럼 청소년의 모방심리를 자극하는 부분은 없는지 등도 중요한 검토 사항이다.

“보호자란 아이와 청소년에게 영화에 어떤 장면이 있고,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지도할 수 있는 부모 등 성인을 말한다. 전체관람가 영화라 해도 연령에 따라 아이의 반응이 달라 보호자는 미리 어떤 내용과 장면이 있는지 살피고 아이에게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미디어 교육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부모와 아이들은 신작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고 직접 영화의 등급을 매겼다. 실제 영화 등급분류위원들이 작성하는 ‘등급 분류 프로그램 의견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의 등급과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직접 해보니 등급 분류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왜 필요한지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관람 등급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연령이자 영화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즐길 수 있는 ‘기준’이라는 점도 공감하게 됐다는 반응이다.

아이들도 왜 나이에 맞는 영화를 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한 어린이 참가자가 “영화를 마음대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등급을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는 소감을 말하자 장내엔 웃음이 터졌다. 일곱 살 자녀와 함께 참가한 김은희(38)씨는 “영화를 볼 때 등급은 생각하지 않고 불편한 장면이 나오면 아이의 눈을 가리기만 했다”며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좀 더 주의해야겠다”고 말했다.

최근 영등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 중 월 1회 이상 ‘영화를 함께 본다’고 응답한 비율은 50.2%다. 절반이 넘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영화를 보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등급을 자녀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는 응답이 47%에 달했다. ‘아이가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는 영화를 보는 걸 알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1.3%나 됐다.

아이와 극장 가면서 등급엔 깜깜

아동과 청소년은 유해한 영상을 접하게 되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연구 결과, 영화 속 흡연 장면을 많이 접한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흡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해 영상물로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와 가정의 역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제도가 ‘보호자 동반 관람’이다. 우리나라 영상물 등급 분류는 만 나이를 기준으로 ‘전체 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5개의 연령별 등급으로 나뉜다. 부모와 교사 등 보호자가 함께할 경우 예외적으로 12세 이상 관람가와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때 부모나 교사는 영화를 보는 게 적절한지 판단하고 영화의 주제·폭력성·선정성 등을 아이에게 설명해야 한다.

정작 아이와 영화를 볼 때 지도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보호자 동반 관람에 대한 부모의 인식이 낮은 편이다. 건강한 미디어 환경을 만드는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 서문하 대표는 “아이들은 같은 나이여도 신체적·정서적 발육이 조금씩 달라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아이에 따라 받는 충격과 영향이 다르다”며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와 교사가 아이 눈높이에 맞춰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상물 등급 분류를 담당하는 영등위는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미디어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학부모로까지 확대하고, 멀티플렉스 3사와 올바른 영화 관람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안치완 영등위 정책홍보부 부장은 “자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의 관심과 동참이 필요한 만큼 아이와 함께 영화 등급 분류를 체험하는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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