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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탄 정윤회가 잡으러 오는 악몽, 지금도 신변 위협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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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사회체육과 교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교육ㆍ문화ㆍ체육계의 폭넓은 네트워크로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안 의원이 20대 국회부터 쓰고 있는 의원회관 620호는 박근혜 대통령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쓰던 곳이다. 김춘식 기자

중앙대 사회체육과 교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교육ㆍ문화ㆍ체육계의 폭넓은 네트워크로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안 의원이 20대 국회부터 쓰고 있는 의원회관 620호는 박근혜 대통령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쓰던 곳이다. 김춘식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국가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가족 사기단 사건’이다. 대통령부터 최순실과 그 가족들, 청와대 관료, 맨 아래 호빠맨 고영태까지. 몸통은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 없이는 이 게이트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검찰은 늑장 수사, 증거인멸 방조에 이어 꼬리자르기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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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가 몰리고 있는 안민석 의원 휴대전화에 스위스 은행 직원의 통화 내용도 들어 있다.

제보가 몰리고 있는 안민석 의원 휴대전화에 스위스 은행 직원의 통화 내용도 들어 있다.

황사처럼 대한민국을 뒤덮어버린 초대형 게이트. 그 진실의 빗장을 열기 시작한 이가 안민석(50·4선·오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2014년 4월 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유라의 공주 승마 의혹’을 폭로했다. 그 내용 중에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안 의원은 이후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과 딸 장시호의 존재, 박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등 굵직굵직한 폭로로 ‘게이트 정국’의 중심에 섰다.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 의원을 만났다. 그와는 체육계에서 오랜 인연이 있다. 안 의원은 “정유라라는 한 승마 선수의 비리를 캐다 보니 상상도 못한 거악과 마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최초 폭로한 안민석 의원

현재 가장 큰 이슈는 뭔가.
“전체적으로는 10분의 1 정도 드러난 것 아닐까. 무기 쪽이 정말 큰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문화·체육 쪽과는 돈의 단위가 다른데 최순실이 가만히 뒀겠나. 무기거래상 쪽에서 제보가 와야 하는데 그들끼리 먹이사슬로 엮여 있어서 쉽지가 않다.”
빨리 잡아들여야 할 사람은.
“장시호, 그리고 정유라다. 검찰에서 최순실을 보름 넘게 조사했는데 별로 나온 게 없다. 최순실의 역린은 결국 딸 유라다. 정유라를 구속하면 최순실은 무너질 거라고 보는데, 검찰이 이렇게 방치하고 있으니 의심을 받는 거다.”

장씨는 인터뷰를 한 지 3일 후인 18일 검찰에 체포됐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날 오후 4시쯤 서울 도곡동 친척집 인근에서 장씨를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는 자신이 실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제보가 안 의원 쪽으로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신뢰도다. 최근에 스위스 은행에서 일하는 한국인 펀드매니저로부터 최순실 측에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환전 제의를 해 왔다는 제보를 받았다. 근데 액수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커서 신뢰도가 낮다고 보고 우선 순위에서 미뤄놓았다.”
최순득이 외교 행낭을 통해 거액을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빼돌렸다는데.
“2013년 6월부터 3년간 베트남 대사를 한 인물(전대주)이 최순득의 아들(장승호)을 베트남에서 돌봐준 후견인이다. 외교관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사가 돼 다들 의아해했다. 자신들의 말을 잘 따르는 대사를 꽂아두고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짓을 다 했을 것이다. 최순득이 강남 친구들에게 ‘큰 사업을 하려고 베트남에 거액을 보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데, 은행 쪽을 확인해보니 정식으로 넘어간 돈이 없다. 이 정도 이야기가 나왔으면 외교부에서도 확인을 해야 할 거 아닌가.”
최순실 연예인 명단’ 관련해 검색어 1위까지 올랐는데.
“최순실 일당이 오만군데 손을 안 뻗친 데가 없다는 차원에서 한 이야기다. 내가 특정인을 거론한 적도 없는데, 몇몇 연예인들이 난리가 났다. 나는 박근혜-최순실이라는 거대 악과 싸우고 있는데 이건 본질이 흐려지는 싸움이다. 고발하고 법적 대응을 한다는데 그렇다면 증거를 대 주겠다.”

“정유라 출산으로 올림픽 메달 계획 꼬여”

안 의원은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했고, 중앙대 사회체육과 교수를 지냈다. 경기도 오산에서 4선을 했다. 초선 시절부터 지금까지 교육·문화·체육 분야 상임위만 맡았다. 그동안 쌓은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이번 게이트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2014년 4월 국회에서 폭로한 ‘정유라 공주 승마’ 관련 제보는 어디서 받았나.
“참여정부 시절 남북체육교류위원회에서 함께 일한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분이 ‘안 의원이라면 믿고 제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지난 4월 총선에서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이 게이트를 계속 파헤칠 수 있었다. 총선 당시 거물급도 아닌 나를 떨어뜨리려고 여권 내에서 ‘오산 지역구에 자객을 보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공주 승마’ 폭로에 당시 여당 의원 7명과 김종 문체부 2차관이 집단으로 반발했는데.
“대정부 질문을 할 때 사실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더 큰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 계속 추적을 했다. 최순실은 딸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승마를 시켰는데 어느 순간 올림픽 메달까지도 염두에 둔 것 같다. 올림픽 심판들도 매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정유라가 출산을 하면서 스텝이 완전히 꼬였다.”
결국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했는데.
“정유라가 연세대·고려대·중앙대·이화여대에 지원했다. 내가 ‘원칙대로 해라. 정권 바뀐 이후에 탈이 날 수 있다’고 중앙대와 이화여대 측에 의견을 전했다. 중앙대는 내 얘기를 들었고 이화여대는 안 들은 거다. 정유라가 임신한 것도, 남자가 누구인지도 2015년 1월에 알았다.”
정유라의 학점과 출석 관리에도 문제가 많았는데.
“내가 만든 수영교육연구모임에서 9월 초에 한 교수가 ‘최순실이 이화여대에서 난리를 쳤다더라. 웃기는 여자다’는 얘기를 했다. 최순실이 난리를 피웠다는 건 학교와 뭔가 문제가 생긴 건데 싶었다. 최순실이 이화여대에 간 게 두 번이다. 2015년 2학기 개학하자마자 찾아갔는데, 그 뒤 보름 만에 (특기자의 출석 기준을 완화하는) 내규가 만들어졌다. 지난 4월 말에 두 번째 갔는데 5월에 (내규를 뒷받침하는) 학칙이 개정된다. 김경숙 건강과학대학장이 키맨이었던 것 같다. 최순실이 김종에게 지시하고, 김종이 김경숙에게 역할을 맡긴 것 같다. 그 이후 김 학장은 엄청난 이권과 특혜를 누리게 된다.”

"김종 체육계 농단 때 교수들은 뭘 했나”

안 의원은 인터뷰 도중 “체육 얘기만 합시다”고 몇 차례나 말했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그 시초는 체육 쪽에서 시작됐다. 안 의원이 진실의 문에 접근하게 된 것도 체육통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도 체육 개혁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걱정이다.
“2013년 평창특위에서 겨울올림픽을 치렀던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를 가보고 고민했다. 겨울스포츠가 활성화 된 도시에서도 올림픽 이후 시설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최대한 적게 짓고, 조립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정부도 좋다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14년 발표한 ‘어젠다 2020’(올림픽 개최국 외 경기장 활용 승인)은 평창 올림픽의 적자 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그런데 IOC의 분산 개최 제안을 박 대통령이 “의미 없다”고 걷어차 버렸다. ‘도대체 왜 저러나. 누구에게 말을 들었나’ 싶었는데 최순실 말을 들은 거였다. 지금은 답이 없다. 강릉에 짓고 있는 3개 대형 빙상장은 올림픽이 끝나면 애물단지가 될 게 뻔하다. 이 사람들이 올림픽을 완전히 결딴 내려 한 거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장시호를 위해 만든 거라고 하는데.
“최순실 일가가 동계 종목을 장악하기 위한 발판으로 만들었다. 장시호는 동계종목 스타들을 들러리 세우고, 강릉의 빙상장 하나씩 나눠준 뒤 운영비는 국가에서 받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 명칭에서 ‘서울’을 빼고, 평창 올림픽 사후관리까지 맡기자는 법안을 강원도 지역구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상태다.”

최순실, K스포츠를 돈 벌이 수단으로 악용

K스포츠재단은 스포츠산업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스포츠 민관 거버넌스라는 형식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기꾼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놓고 개인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러면서 체육 비리 척결이랍시고 체육인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뒤 자기 사람을 심었다. 최순실의 부역자 김종 차관이 ‘비정상의 정상화’ ‘체육 개혁’이라며 전횡을 일삼는 동안 이를 비판한 교수 한 명 없었다.”
진실의 문을 연 당사자로서 어떤 책임을 느끼나.
“더불어민주당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검찰이 잘하면 조사위원회가 왜 필요하겠나. 검찰이 갖고 있는 정보가 내가 확보한 것보다 빈약한 것 같다. 특검을 시작하려면 한 달은 지나야 한다. 그 사이에 숱한 증거 인멸이 이뤄질 것이다. 하나라도 더 많은 진실의 퍼즐을 끼워맞춰서 특검에 전달하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혹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최순실의 전 남편이자 정유라의 아버지, 정윤회 이름이 나왔다. “2014년에는 정윤회가 말 타고 나를 잡으러 오는 꿈을 자주 꿨다. 무서웠다. 당시에는 야당 의원들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러다 테러당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는 요즘도 귀가할 때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댄 뒤 수행하는 운전기사와 함께 집앞까지 간다고 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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