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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같은 노래, 다른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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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지겹나요 힘든가요/숨이 턱까지 찼나요/할 수 없죠 어차피/시작해 버린 것을.”

뉴스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 “라디오를 들으며 컨디션 조절 중인 고3이에요. 응원해 주세요”라는 사연과 함께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4월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 10월엔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처럼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11월에 한 번쯤 꼭 듣게 되는 윤상의 ‘달리기’다. 나 또한 10여 년 전 초조할 때마다 따라 부르던 곡이기도 하다. 여러 번의 모의고사로 펜촉을 길들인 검정 사인펜을 필통에 담고, 야간자율학습 때 교복 치마 속에 입던 가장 편한 운동복 바지를 입고 고사장에 들어서던 그날 아침이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난한 수험 생활을 버텼을 60여 만 수험생에게 박수를 보낸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입이 바싹 말라와도/할 수 없죠 창피하게/멈춰 설 순 없으니.”

공교롭게도 이 노래는 박근혜 대통령의 애청곡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장차관 워크숍에서 “입술도 바짝바짝 마르고 힘들지만 이미 시작했는데 중간에 관둔다고 그럴 수도 없고 끝까지 하자는 내용”이라며 즐겨 듣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우병우 민정수석,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미르·K스포츠재단 등 온갖 의혹과 논란으로 속이 상했을 때다. 애청곡을 통해 대통령직을 ‘완주’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유도 없이 가끔은/눈물 나게 억울하겠죠/일등 아닌 보통들에겐/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이 나라 ‘보통 국민’은 매일 참담한 심정으로 뉴스를 보며 한 달 가까이 즐거움을 잊고 산다. 광장에 100만 명이 모였지만 일주일이 다 되도록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억울함에 소리쳐 봐도, 이 악물고 달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때 ‘보통이’들은 좌절하고 자책을 한다. ‘왜 안 되지? 애초에 안 될 일이었는지도 몰라. 이럴 시간에 당장 먹고살 걱정이나 해야지’ 대통령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하는 달리기가 이런 그림은 아닐까.

“단 한 가지 약속은/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It’s good enough for me(그걸로 난 됐어요)/bye bye bye bye(안녕 안녕 안녕 안녕).”

어제 저녁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보신각 앞에 모여 ‘박근혜 하야 고3 집회’를 열었다. 내일, 19일에도 영풍문고 앞에서 청소년 시국대회가 열리는데 전국 주요 도시에서 서울로 가는 고3 청소년 버스를 운행한다고 한다. 촛불을 든 ‘보통 국민’의 달리기와 대통령의 달리기. 결승선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다르지만 어느 쪽이든 참 힘든 완주가 될 것 같다.

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