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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달려가는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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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사 연기 다음 날 “엘시티 비리 수사하라” 지시…정치권에 반격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최순실 사태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돌연 부산 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16일 “박 대통령은 오늘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엘시티(LCT) 비리 사건에 대해 가능한 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2차관 임명, 국정 재개
야당 “수사 대상자가…코미디”
대통령 버티기에 혼란 장기화
“지금은 탄핵이 유일한 방법”

정 대변인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의 엘시티 비리 사건과 관련해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이 조성돼 여야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뇌물로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이 회장은 부산 해운대에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인허가와 2조원 규모의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해 총리 지명권을 국회로 이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후 계속 침묵을 지키던 박 대통령이 이날 갑자기 엘시티 사건을 거론한 것은 정치권을 겨냥한 일종의 반격 카드란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시중에 엘시티 사건과 관련해 정체불명의 여야 정치인 리스트까지 나돈다”며 “야당과 새누리당 비박계에게 맞불을 놓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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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박 대통령 본인이 수사 대상인데 법무장관에게 지시를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며 “지금 대통령이 그런 명령을 내릴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황영철 의원도 “박 대통령이 엘시티 사건 수사를 말하면 오히려 수사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들 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를 희석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전날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모든 의혹이 정리되는 시점에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즉각적인 검찰 조사를 거부해 16일로 예정된 검찰 조사가 무산됐다.

박 대통령은 외치(外治)를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청와대는 1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과 접촉하기 위해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 실무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했고, 안총기 주 벨기에·EU 대사를 외교부 2차관에 내정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 수위도 높아졌다. 정연국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이란 순방 당시 최순실씨가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했다는 채널A의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자제하고 좀 자중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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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 대규모 촛불집회가 다시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는 사실상 ‘버티기’에 나서면서 강공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자 파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장벽을 치면서 권력을 못 내려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통치자가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면 (국정은) 엉망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시간을 정해 놓고 하야)이 가능하면 좋지만 지금으로선 국회가 할 수 있는 방식은 탄핵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하·강태화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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