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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16> 물길로 이어진 도시의 속살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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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로 유명한 수상 마을 `치바오` 입구.

양고기는 치바오의 특산품 중 하나다. 거리에서 양꼬치를 쉽게 볼 수 있다.
치바오식 단팥빵인 `하이탕가오`.

상하이에는 “지난 10년 역사를 보려면 푸동으로, 100년 역사를 보려면 와이탄으로, 1000년 역사를 보려면 치바오로 가라”는 말이 있다. 치바오는 물길을 따라 형성된 오래된 수상 마을, 이른바 ‘수향’이다. 상하이에는 치바오와 같은 수향이 여럿이다.

불과 150년 전만해도 상하이에는 소박한 어촌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와이탄과 위위안 정원 주변의 길들이 모두 황푸강으로 통하는 수로였다. 와이탄과 올드시티를 나누는 도로인 옌안동루 역시 과거에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물길이었다. 하지만 상하이가 개항장이 되고,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1850년대부터 이런 물길은 하나 둘 매립돼 사라졌다.

신창 수상마을은 상하이에서도 아직 덜 알려진 수상 마을이다.

신창 수상마을은 상하이에서도 아직 덜 알려진 수상 마을이다.

시내에서는 더 이상 수향의 흔적을 보기 힘들지만, 외곽으로 20㎞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동양의 베니스라는 쑤저우까지 가지 않아도 고즈넉한 수향의 정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치바오와 주쟈쟈오(朱家角), 신창 마을이다. 이런 수향에 가보고 나면 비로소 ‘상하이는 와이탄과 푸동’이라는 여행 공식이 깨진다.

치바오는 상하이 시내에서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다.

치바오는 상하이 시내에서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다.

치바오는 상하이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20㎞ 정도 떨어져있다. 지하철 치바오역에서 도보 10분 거리라 상하이의 수향 중에서는 접근성이 가장 좋다. 반면 대형 쇼핑몰과 현대식 주택 단지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사실 치바오를 찾는 주목적은 바로 좁은 골목에 모여 있는 길거리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맛깔 나는 중국의 간식을 부담 없이 맛보기 좋다.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중국 전통 과일 사탕 ‘탕후루(糖葫芦)’부터, 치바오식 단팥빵 ‘하이탕가오’, 대나무잎에 싸서 찐 삼각 찐밥 ‘종즈’, 시큼한 냄새와 달리 맛은 고소한 삭힌 두부 튀김 ‘처우더어푸(臭豆腐)’까지 거리 전체가 상차림이다. 양고기 수육(白切羊肉)과 술도가에서 직접 빚은 고량주 ‘치바오다취’은 치바오에서 알아주는 특산품이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치바오에만 있는 이색적인 박물관도 가보자. 피잉 예술관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의 그림자극을 소개하는 곳인데, 오후에는 짤막한 공연도 보여준다. 애완용 귀뚜라미 전시관도 특별하다. 여염집 거실처럼 작은 전시관 안에 애완용 귀뚜라미와 싸움용 귀뚜라미는 품종, 관련 도구를 전시해놓았다. 가을 추수 후에는 노인들이 마당에 모여 귀뚜라미 싸움’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주쟈쟈오에는 예쁜 수상 카페와 바가 많다.

주쟈쟈오는 상하이 시내에서 멀지만 좀더 고즈넉한 정서를 즐길 수 있다.
주쟈쟈오의 카페 거리인 차오시졔 거리.
주쟈쟈오의 먹자골목인 베이다제 거리. 길이 좁아서 `틈새 거리`라는 별명이 있다.

먹거리보다는 사진 찍기 좋은 풍광과 분위기를 중시한다면 주쟈쟈오(朱家角)로 가보자. 얽히고설킨 좁은 물길, 소박하게 늘어선 수상 가옥들, 대나무갓 차림으로 노를 젓는 사공과 나룻배를 보고 싶다면 말이다. 주쟈쟈오는 옛 시인이 즐겨 노래한 강남 수향의 풍경을 고스란히 품은 곳이다. 하지만 마냥 전통에만 머물러있지도 않다. 젊은 여행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예쁜 카페와 바가 많다. 상하이 시내에서 주쟈쟈오까지는 50㎞ 이상 떨어져 있어 왕복 2시간이 소요된다. 4박5일 정도의 긴 일정이라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 다녀올 만하다.

주쟈쟈오를 가로지르는 차오강과 강변의 수상가옥들. 위안진선원 안 누각 위에서 본 모습이다.

주쟈쟈오를 가로지르는 차오강과 강변의 수상가옥들. 위안진선원 안 누각 위에서 본 모습이다.

주쟈쟈오 마을 남북으로는 운하가, 동서로는 넓은 강(漕港河)이 관통한다. 물길이 5㎞ 떨어진 호수(淀山湖)에서 발원해 특별히 맑고 시원스럽다. 마을 자체는 삼국시대인 1700년 전부터 형성됐는데, 원나라 때에 주씨(朱家)의 집성촌이 되면서 지금의 명칭이 굳어졌다고 한다. 명·청 시대에는 쌀 생산지로 명성을 떨치며 크게 번성했고, 강과 운하를 따라 지그재그로 얽힌 골목길에 예스러운 가옥, 36개의 오래된 석교가 남아있다. 걸어서 천천히 둘러보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나룻배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이 좋다. 마을 정중앙, 강변에 위치한 위안진선원은 꼭 들러보자. 절 안쪽 칭화거 누각 꼭대기인 3층에 올라가면, 주쟈쟈오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창 마을은 야경도 아름답다.

영화 `색계`의 촬영지인 `제일루다원`은 신창 마을의 랜드마크다.

신창 마을은 치바오나 주쟈쟈오에 비해 아직 덜 알려진 곳이다. 그만큼 관광객의 때를 덜 탄 곳이기도 하다. 푸동 공항에서 남쪽으로 30㎞ 이상 떨어진 외진 위치이지만 알음알음 즐겨 찾는 중국인들이 많다. 대부분 영화 ‘색, 계’의 추종자들인데, 필자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영화 속 촬영지인 전통찻집 ‘제일루다원’은 신창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다. 영화에서 광위민(왕리홍 역)이 왕치아즈(탕웨이 역)와 재회해 이선생(양조위 역)암살을 모의하던 장소다. 청나라 때 지어진 3층 규모의 건물은 마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해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내부에 우아하게 꾸민 다실도 볼 만하다. 영화 촬영 장소는 소박한 분위기의 2층 창가다.

제일다원루 2층에 영화 `색계`의 촬영 테이블이 있다.

제일다원루 2층에 영화 ‘색, 계’의 촬영 테이블이 있다.

탕웨이가 앉았던 탁자에는 영화 스틸컷 액자가 놓여 있었다. 들창을 여니 영화 속 장면처럼 오래된 기와 지붕이 보였다. 부쩍 차가워진 가을바람 덕분인지 익숙잖던 중국차가 가깝게 느껴졌다. 중국식 덮개 찻잔을 눌러 잡고, 따뜻한 황차를 들이켰다. 녹차의 신선함과 홍차의 깊은 맛이 반반씩 느껴졌다. 차 한 잔 속에 변화무쌍한 가을의 맛이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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