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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즐기는 짜릿한 야구 팟캐스트 계속 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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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주간야구 왜’시각장애 PD 권순철씨

권순철씨는 출연료 등 야구 팟캐스트의 제작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해 어려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나처럼 라디오를 들으면서 꿈을 키울 사람들을 생각하면 제작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 김상선 기자]

권순철씨는 출연료 등 야구 팟캐스트의 제작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해 어려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나처럼 라디오를 들으면서 꿈을 키울 사람들을 생각하면 제작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 김상선 기자]

24년 전, 선천성 1급 시각장애인 권순철(35)씨는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듣다가 야구 배트와 공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매료됐고 야구에 빠져들었다. 중계방송을 녹음해 반복해 들으면서 야구 경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24년 전 야구 중계 듣다 흠뻑 빠져
안마사 일하며 틈틈이 연출·편집

소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방송 제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고교생 시절 교내 방송부장도 맡았다. 그는 2007년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에 출연한 데 이어 현재 KTV 인터넷 라디오의 ‘내 손을 잡아요’와 KBS 제3라디오의 ‘내일은 푸른 하늘’의 한 코너를 맡아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서 겪는 일들을 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는 야구 전문 팟캐스트 ‘주간야구 왜’를 제작하고 있다. 생업인 안마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연출·편집을 하고, 대본을 쓰면서 패널로도 출연한다.

11일 만난 권씨의 목소리엔 활력이 넘쳤다. “요즘 라디오에선 청취율이 낮다는 이유로 야구 관련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어요. 제가 그랬듯이, 야구를 귀로 즐기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팟빵과 아이튠즈를 통해 매주 방송되는 ‘주간야구 왜’는 한 주간의 야구 소식을 전한다.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비시즌에도 메이저리그나 야구 선수의 근황 등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방송을 쉬지 않는다. 팟빵의 스포츠 팟캐스트 인기 순위에서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진행은 팟캐스트 DJ 김원식(31)씨와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31)씨가 맡고 있다. “야구 경기는 흐름이 느리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도 내용을 90% 정도 이해할 수 있어요. 중간중간 타자가 새로 들어오거나 포수가 사인을 교환하는 시간이 있지요. 그 시간 동안 경기의 흐름을 상상해요. 해설을 들으면서 내 예측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어요.”

녹음은 주로 이창훈 아나운서의 집에서 이뤄진다. 권씨는 녹음파일을 저장한 노트북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시각장애인용 화면 낭독 프로그램(센스리더)의 도움을 받아 틈틈이 편집한다. 권씨는 “재미와 전문성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말했다. 야구 전문기자와 해설위원, 프로야구 팀의 주치의 등도 전화 연결을 통해 출연한다. 권씨가 꼽은 인기 코너는 ‘반말야구’. 권씨 등 출연자가 마치 친구처럼 편하게 전화 통화하는 방식으로 야구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권씨에게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다. 출연료 등 제작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이 제작비를 지원해줬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워져 지원이 힘들어졌어요. 아직 프로그램에 광고가 붙지 않아서 생기는 수입도 없죠. 하지만 누군가 저처럼 라디오를 들으면서 꿈을 키운다고 생각하면 멈출 수 없어요.”

그의 목표는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시각장애인의 직업은 한정적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방송에 재능있는 시각장애인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고 싶어요.”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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