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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0%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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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두고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학생만이 아니다. 젊은 직장인도 토요일마다 동료나 친구의 손을 잡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한다. 심지어 교복을 입은 중·고교생도 촛불집회에 나와 ‘대통령 하야’를 외친다. 1980년대나 90년대처럼 대학가를 하나로 묶는 학생운동 세력이 없음에도 자발적인 이들의 외침은 더욱 커지고 있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최대 규모다.

그동안 청년세대는 정치 이슈에 무관심했다. 2000년대 초반 대학가에 ‘비운동권’ 세력이 등장하며 학생 운동의 주제는 정치가 아닌 반값 등록금, 아르바이트 권리 찾기, 성소수자 등 ‘생활 밀착형’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양파 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드러나는 국정 농단 의혹에 이들은 충격을 넘어 분노로 전율했다. 분노는 대통령 지지율 0%로 표출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한 여론조사에서 19~29세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0%였다. 통계상으로 640만 명에 달하는 19~29세 청년 중 아무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2일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학생의 대통령 지지율이 1%도 아닌 0%”라고 말하자 앉아 있던 참가자가 모두 환호할 정도다.

87년 민주화 이후인 80~90년대에 태어난 청년세대는 부모세대에 비해 민주화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자랐다.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을 이룬 덕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경제는 2~3%대의 저성장의 늪에 빠졌고 일자리는 급감했다. 사회에 갓 진출하려는 청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청년층은 저성장의 황야에서 실업이라는 회오리 바람을 견뎌야 했다. 올 10월 전체 실업률은 3.4%이지만 청년 실업률(15∼29세)은 전체 실업률의 2.5배인 8.5%에 달한다. 특히 20대(20~29세)는 10월 현재 370만 명만 취업했다. 무려 270만 명이 여러 이유로 취업전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선거 때만 청년 실업에 목청을 높였지 선거 후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청년은 정치 무관심층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제대로 된 청년 실업 대책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력서에 수십 개의 아르바이트 경력만 쓸 수밖에 없는 청년에게 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 건 정치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비선실세 딸의 말에 분노했고 권력과 돈만 있으면 불공정과 반칙으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높은 자리도 쉽게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폭발했다. 이번 사건은 ‘침묵하는 청년’에서 ‘행동하는 청년’으로 바꾸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다. 이제 청년발 정치 혁명이 시작됐다.

김 창 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