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 리포트] 컴퓨터 개발하기도 전에 인공지능 구상한 수학 천재 아시나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6.11.13 00:01

업데이트 2016.11.14 09:53

요즘 ‘뇌섹남’, ‘뇌섹녀’란 말이 자주 쓰이죠. 뇌가 섹시한, 즉 지적인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아래 소개할 세 사람은 인류 최고의 뇌섹남이자 수학 천재들입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단 점이죠.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우선 기사를 읽어봅시다. 그 다음엔 함께 소개한 영화를 감상하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천재들의 삶에 한 번 더 푹 빠져봅시다.

영화 속 수학자 이야기

스리니바사 라마누잔(1887~1920)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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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끙끙 앓아도 절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너무나 쉽게 문제를 풀어버리죠. 천재를 다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인데요. 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꼭 이런 영화 주인공 같은 사람입니다. 수학자가 되기 전, 그는 남인도의 한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임시직 서기였죠. 평범했던 그에겐 유독 남달랐던 점이 있습니다. 어떤 수학 문제든 뚝딱 풀어 버리는 엄청난 통찰력이죠. 그가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수였던 고드프리 하디의 눈에 띈 것도 이 때문입니다. 1913년 1월 16일, 라마누잔은 자신이 발견한 수학 공식을 편지로 써 하디에게 보내는데요. 하디는 편지를 읽은 소감을 훗날 이같이 회상합니다. “라마누잔의 정리들은 참임에 틀림없다. 이것들이 참이 아니라면 이를 생각해낼 사람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죠. 하디가 병원에 입원한 라마누잔의 문병을 갔을 때의 일인데요. 하디가 1792번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하자 라마누잔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792는 무척 재밌는 수예요. 1729=13 +123 =93 + 103 이 식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둘 이상인 수 중 가장 작은 수거든요.” 깜짝 놀란 하디는 그렇다면 네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둘 이상인 수 중 가장 작은 수는 얼마인지 물었죠. 라마누잔은 잠깐 생각하더니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주 큰 수예요”라고 답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답은 그가 말한 대로 6억이 넘는 엄청 큰 수였죠. 이처럼 숫자에 관한 타고난 감을 가졌던 라마누잔은 훗날 수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분할’에 큰 공을 세우는데요. 그의 업적을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 = 3 + 1 = 2 + 2 = 2 + 1 + 1 = 1 + 1 + 1 + 1 이 식을 보면 4를 다른 자연수들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총 네 가지죠. 이처럼 주어진 수를 자연수의 합으로 표현할 때 그 방법의 개수를 ‘분할수’라고 하는데요. 라마누잔은 하디와 함께 어떠한 자연수의 분할수든 알아낼 수 있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당시 라마누잔의 주변에는 그의 출신을 문제 삼아 비난하는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영화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라마누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하디와 그의 지지 속에 연구를 해나가는 라마누잔의 우정이 잘 표현돼 있죠. 또 홀로 영국에 와야 했던 라마누잔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학에 매달리는 모습은 마음을 울립니다.

존 내쉬(1928~2015)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심심풀이 축구 경기 한 판을 할 때도 전략을 짭니다.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는 이같은 게임 상황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에 대해 연구한 ‘게임이론’을 만든 사람인데요. 파릇파릇한 21살 대학생 시절 생각해낸 것이라 그런지 발상이 재밌습니다.

잠깐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눈앞에 금발머리 아가씨 1명과 갈색머리 아가씨 4명이 보입니다. “누가 저 금발머리 아가씨를 차지할지 경쟁하자”고 부추기는 친구들에게 내쉬는 이렇게 거절합니다. “우리 중 금발머리 아가씨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야. 그녀가 우리 모두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지. 금발머리 아가씨를 포기하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접근한다고 해서 좋을 리 없어. 자존심이 상한 아가씨들이 우릴 거부할 테니까. 반대로 아무도 금발머리 아가씨를 넘보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우리끼리 경쟁할 일도 없고 그녀의 친구들도 기분 상하지 않겠지. 이거야말로 다 같이 이기는 길 아닐까?” 이처럼 내쉬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게임 상황에서 내리는 의사결정 중에는 참여한 모두가 최적의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되는 균형 지점이 있다고 주장했죠.

존 내쉬

존 내쉬

이런 발상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대학 시절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프린스턴대학원에 진학할 때 지도교수의 추천서엔 “이 친구는 수학 천재입니다”란 간단한 멘트가 적혀 있기도 했죠. 그가 만든 게임이론은 역시 천재라 불리는 존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을 한층 발전시킨 것인데요. 노이만의 이론은 두 명이 참여하는 게임 상황은 잘 설명했지만 내쉬의 이론과 같이 여러 명이 참여하는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기엔 부족했죠. 이렇게 똑똑한 내쉬에게도 영광의 순간은 일찍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논문을 발표하고 무려 44년이 흐른 뒤인 1994년이에요. 그 사이 내쉬는 조현병으로 수년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죠. 아내인 알리샤 로페즈 해리스가 헌신적으로 간호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던 둘은 결국 1963년 이혼합니다. 다행히 1980년대 후반부턴 증세가 기적적으로 나아져 내쉬는 다시 학자로서 활동하고 알리샤와 재혼도 하죠. 노벨상 시상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오게 만든 것은 수학 이론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영화에는 정신분열증으로 황폐해져가는 내쉬의 삶과 그를 위해 희생도 마다 않는 알리샤의 사랑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내쉬가 가장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로 꼽히는 것도 이 영화 덕분이죠. 2002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거든요.

앨런 튜링(1912~1954)

지난 3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있었죠. 앨런 튜링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을 제안한 영국 수학자입니다. 놀라운 점은 컴퓨터가 개발되기도 전에 이처럼 혁신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그의 이러한 ‘끼’는 학창 시절부터 발휘됐는데요. 난해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자기 식대로 변형해 공식을 만들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사교성이 부족한 그에겐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만큼은 풀 수 없는 난제였죠.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친구 크리스토퍼 모컴마저 결핵으로 죽자 그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공지능 연구를 시작하죠. 인간의 지능을 보관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면 모컴의 뇌 속 지식들도 영원히 보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앨런 튜링

앨런 튜링

그의 독특한 상상력이 진가를 발휘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전쟁이 터지자 영국 정부는 뛰어난 수학 실력으로 유명했던 튜링을 비밀기지인 블레츨리 파크로 부르죠.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었는데요. 에니그마란 무려 2,418,983,437,669,710,912,000가지의 비밀 암호를 만들 수 있는 기계장치입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암호들을 튜링은 어린 시절부터 구상한 방법으로 풀기로 결심하죠. 바로 ‘생각하는 기계’를 통해서요. 그는 2400개의 진공관(진공의 공간에서 전기를 흐르게 함으로써 신호를 증폭하거나 변경하는 장치)으로 이뤄진 3m 높이의 거대한 기계 ‘콜로서스’를 만듭니다. 이는 암호를 읽는 장치와 작동 규칙표(지금의 소프트웨어)에 따라 암호를 해독하는 제어 센터, 이를 사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표시한 쓰기 장치 등으로 구성된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콜로서스를 이용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내며 전쟁에 큰 공을 세웠죠.

영화에는 사람들의 반대 속에서도 꿋꿋이 암호 해독 장치를 만들어내는 튜링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튜링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해 좋은 평을 받았죠. 암호 해독팀에서 유일하게 튜링을 이해하는 이였던 조안 클라크에게 서서히 마음을 여는 튜링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 역시 감상 포인트입니다.

글=이연경 프리랜서 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판씨네마·메가박스(주)플러스엠,
참고 도서=『천재들의 수학노트』 『티타임 사이언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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