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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커 뉴스] 트럼프, 한·미 FTA 독단적으로 폐기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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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일자리를 죽이는 재앙(disaster)을 초래하는 협정이다.”(9월 15일 뉴욕 경제클럽 강연) “한·미 FTA는 깨진 약속(broken promise)으로 일자리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8월 8일 디트로이트 유세 연설)

[이슈추적]
의회서 비준, 대통령 뜻대로 못 없애
재협상하려면 한국 동의 필요
법률시장 개방 압박은 강해질 듯

미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 당시 한·미 FTA에 대해 한 발언이다. 그는 한·미 FTA로 빼앗긴 일자리가 10만 개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제기되는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짚어봤다.

① 미국이 원해도 한국이 거절하면 개정 불가능=트럼프는 FTA 재협상을 주장하면서 amend(개정), revise(수정) 등의 표현을 썼다. 하지만 한·미 FTA 제24장 제24.2조는 “양국은 협정 개정을 서면으로 합의할 수 있다. 개정은 양국이 서면 통보를 교환한 후 합의하는 날 발효한다”고 규정했다. 즉, 한쪽만 원해선 개정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원해도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양측이 개정 협상에 동의한다면, 그건 미국만 상향된 요구 조건을 내는 게 아니라 우리도 우리에게 유리한 새로운 내용을 넣자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② 미국이 일방 폐기 뒤 새 협정 체결 요구는 가능=국가 간 조약도 개인 간 계약처럼 일방 파기가 가능하다. FTA 제24.5조는 “이 협정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게 협정 종료 희망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 종료된다”고 적시했다. 미국이 현 협정의 무효화를 통보한 뒤 새로운 협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미 FTA는 행정부만 관련되는 사안이 아니다. 미 의회가 처리한 이행법령에 의해 시행되는 조약이기 때문이다. 아직 명확한 해석이 나온적은 없지만 의회가 정한 법적 근거가 있는 조약에 대통령 독단으로 폐기할 순 없을 것이란 견해가 많다.

③ 트럼프가 실제로 FTA 무효화를 추진할까=한·미 FTA의 운명은 결국 트럼프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한다.

우선 손익을 따져볼 때 현 FTA가 미국에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한·미 FTA를 재앙이라고 부르는 근거는 한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다. 흑자 규모는 FTA가 발효된 2012년 199억4000만 달러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338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서비스 분야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의 대미 적자 규모는 2011년 69억 달러에서 지난해 94억 달러로 늘었다. 게다가 한·미 FTA가 파기될 경우 미국산 자동차는 물론이고 미국산 소고기 등 농축산물의 수입관세율도 크게 오른다. 김지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산물 업계는 공화당의 텃밭 같은 곳이고, 의회도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기에 일방적 파기를 추진할 경우 의회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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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통상 압력은 증가 예상=FTA 파기까진 아니더라도 통상 압력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그간 법률시장 개방 등에 있어 한국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해 왔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가 원점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약값 결정 과정 등에 대해선 압박이 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하남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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