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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한달에 두 개, 청소년에게 무료로 콘돔 나눠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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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콘돔’ 박진아 대표 인터뷰

통아지 상담실의 두 번째 주제는 ‘올바른 콘돔 사용법’이었다. 청소년이 성관계를 경험하는 연령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콘돔 사용법을 배울 기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콘돔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청소년은 콘돔에 접근하기 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관계기사 [통아지 상담실] 완벽한 콘돔 사용법을 알려줄게!(http://tong.joins.com/archives/34663)

반면 청소년임을 인증하면 콘돔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사회적 기업 인스팅터스가 만드는 이브 콘돔(http://evecondoms.com)의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다. 이 회사에서 제조한 콘돔은 국내 최초로 국제 동물 권익단체 페타(PETA)의 ‘비건’(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음)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를 만났다.

-대표님이 젊으셔서 놀랐어요. 회사를 설립한 계기는 뭔가요.
“평소 청소년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와 관심사가 비슷한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셋이 모여 ‘성(性)적 약자를 대변하는 회사를 차려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대학생이던 2014년 시작하게 되었죠. 처음에 성민현 대표가 먼저 제안을 하고, 저와 김석중 대표까지 셋이서 공동대표가 되었어요. 성적 약자 중 하나가 청소년이었죠.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콘돔을 구하기 어려운 청소년에게 콘돔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프렌치레터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군요.
“네.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란 청소년이 온라인으로 콘돔을 신청하면 무료로 매달 콘돔을 2개씩 보내주는 프로젝트예요. 그걸 시작으로 블로그에서 콘돔 쇼핑몰을 열었어요. 창업 당시 우리는 자본도 경험도 많이 부족했어요. 소셜 벤처로 시작해 번갈아가며 휴학도 하고, 대출도 받고 하면서 일을 했죠. 이후 꾸준히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가 직접 콘돔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인스팅터스가 되었어요.”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를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우연히 검색을 하다 알게 되었어요. 청소년이 인터넷을 통해 콘돔을 검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을요. 그때만 해도 청소년이 콘돔을 검색하면 빨간색 성인 인증창이 바로 떴거든요. 콘돔은 10대로부터 아예 격리되어 있는 물건이었어요. 하지만 격리되면 안 되는 물건이잖아요. 청소년이 콘돔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무방비 상태로 접한다면 20대가 되어도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비단 10대의 문제만이 아닌 성인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콘돔 접근성을 높여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공동대표 세 사람 중 혼자 여성인데. 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어렵진 않은가요.
“콘돔을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려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만든 제품은 우리가 가장 먼저 사용해봐요. 본인이 직접 써보고 얘기를 나눠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아야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 알 수 있어요. 저희 사무실에는 콘돔, 생리대, 탐폰 등이 꽁꽁 숨겨져 있지 않아요. 이건 부끄러운 물건이 아니거든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대화가 오가고 그 속에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인스팅터스가 제조·판매 중인 이브 콘돔, [사진=이브 콘돔]

인스팅터스가 제조·판매 중인 이브 콘돔, [사진=이브 콘돔]

-이제 콘돔을 직접 제조, 판매까지 하는데요.
“처음엔 오직 청소년에게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자는 마음뿐이었어요. 제작할 생각은 못했죠. 청소년의 피임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관심은 점차 피임에 소극적인 여성으로 확장됐어요. 콘돔회사가 대부분 남성을 타겟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우잖아요. 사실 콘돔은 여성과 남성 같이 쓰는 물건인데도요. 어딘지 화려하고 온갖 향기가 나는 콘돔은 여성들에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여자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콘돔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브 콘돔’이 탄생하게 되었죠.”

-이브콘돔에서 콘돔 ‘이브’의 뜻은?
“'아담과 이브'에서 가져왔어요. 저희는 성이나 콘돔 사용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위치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이 거부감 없이 콘돔을 구매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죠.”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과 소통할 기회가 많을 텐데요.
“콘돔 신청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개인정보는 즉시 폐기해요.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콘돔을 부모님께 들켜 매를 맞은 친구도 있었고, 학교 행정실로 보내주었는데 학생에게 전달하지 않고 자체 폐기된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청소년이 만약 콘돔을 신청한 것을 들켜도 발뺌이라도 할 수 있도록 ‘가명’을 쓰기로 했어요. 청소년과는 멀고도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죠.(웃음)”

-청소년들이 콘돔을 받는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르기도 하는군요.
“네. 어떤 남학생은 콘돔을 사려다 편의점 점주가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도망치듯 나오면서 엄청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해요. 청소년의 입장에서 콘돔을 사려고 할 때 어려움을 느끼면 큰 수치심과 함께 본인이 잘못했다고 느껴버려요.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죠.”

-청소년은 여전히 콘돔을 구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네. 여성가족부에서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하게 청소년에게 특수콘돔판매를 금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많은 가게들이 이를 혼동하고 청소년에게 콘돔판매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온라인의 경우 접근이 더욱 쉬울 거라 생각하시는데 절대 아니에요. ‘콘돔’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성인 키워드로 분류되어 인터넷에서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하거든요. 관련 뉴스를 보는 것 이외에는 온라인으로 콘돔을 구매하기가 쉽지가 않은게 사실이에요. 이 조항 때문에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청소년이 콘돔을 구매하기 힘든 점을 보면 없느니만 못한 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청소년은 특수콘돔(돌기형, 사정지연형 등)을 제외한 일반콘돔은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콘돔판매를 규제하는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고시가 걸림돌이다. 고시의 내용을 혼동한 일부 상점 직원들이 아예 청소년에겐 콘돔 판매 자체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여가부 관계자는 “편의점이나 소매점들을 일일이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각 점포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고시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것 같네요.
“지금 여성가족부의 고시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규제를 만들어 놓고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 그것이 내포하는 부작용은 없는지 들여다보지 않아요. 여가부가 정한 ‘청소년 특수 콘돔 판매 금지’로 인해 청소년이 일반콘돔조차 구입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반영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해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에요. 아직은 변호사를 만나면서 조율하는 단계인데요. 오래전부터 있었던 규제를 하루아침에 고치기란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꼭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이브 콘돔의 상단에는 '본 제품은 청소년보호법에 의거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콘돔은 성인용품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해소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성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다. 가령 OECD국가 중 낙태율 1위, 콘돔사용률 최하위라는 지표가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말해준다.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요?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구상 중이에요. 홍대, 대치동 학원가 등 학생들이 많은 장소에 찾아가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려고요. 오직 청소년만 무료로 눈치 안 보고 콘돔을 가지고 갈 수 있게요.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의 연장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눠준다니, 다소 파격적인데요.
“네. 비난이 쏟아지겠죠.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웃음) 콘돔을 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콘돔 자판기의 존재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판기를 번화가에 설치해 청소년들이 오가며 콘돔을 조금이라도 접해본다면, 그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청소년 섹슈얼리티를 논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청소년에게도 존중받을 섹슈얼리티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의 어떠한 성적 경험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콘돔이 아이들에게 필요할 리가 없고, 필요해서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성인들의 섹슈얼리티조차 쉽게 인정하지 않은 편이잖아요. 청소년의 경우 더더욱 그렇죠. 알려주지도 않고, 적극적인 도움을 꺼려하는 것 같아요. 없는 셈 치는 거죠. 이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요.”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인정받기 위해 청소년이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이것조차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성교육의 수준으로 청소년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길 기대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의 역할이 더 크다고 봐요. 학교에서 제공하는 성교육은 턱없이 부족해 잘못된 성관념을 가질 수도 있죠. 성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모와 아이가 묻고 답하는 교육이 항상 원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청소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민이나 문제가 있을 때에 인터넷 검색에만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검색으로 알게 된 정보는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거든요. 병원이나 학교가 무섭고 꺼려진다면, 가까운 청소년 지원센터나 청소년 쉼터 등 관련기관을 많이 활용하면 좋겠어요. 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해주고 싶어요. 콘돔을 구해야겠다는 건 훌륭한 생각이에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에 관련하여 접근이 어렵거나 누군가 질책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 아닌 이상 절대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글=이다진 인턴기자 to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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