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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아웃사이더, 워싱턴을 점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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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힐튼호텔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언론 등의 여론조사 예측을 깨고 접전지에서 이기며 힐러리 클린턴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그는 “모든 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AP=뉴시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힐튼호텔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언론 등의 여론조사 예측을 깨고 접전지에서 이기며 힐러리 클린턴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그는 “모든 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AP=뉴시스]

이제 분열의 상처 봉합할 때
모든 미국인 위한 대통령 될 것
가장 부강한 국가로 재건하고
아메리칸 드림 실현해야
미국의 국익 최우선 하겠지만
모든 나라를 공정히 대하겠다

설마 하던 ‘11월의 이변’, 대역전이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 대선에서 히틀러 닮은 대중선동가, 공개적인 인종차별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일본 언론인 사토 노부유키가 적절히 표현한 분노의 시대정신과 가난한 백인들(white poors)이 느끼는 상실감과 변화에 대한 갈구의 힘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충격적이다. 트럼프 정부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걱정하는 세계는 경악하고, 미국의 보수층은 로널드 레이건 이래의 아이콘이라며 트럼프의 당선에 열광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더러웠다(dirty)는 선거운동에서 드러난 대로 미국 민주주의는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위기를 맞았다. 미국 민주주의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민주당 예선에서 선전한 사회민주주의자 버니 샌더스도 “미국 민주주의는 초부유층의 영향력으로 파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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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PC 운동이다. 직역하면 ‘정치적 옳음(Political correctness)’이 되는데 인종차별·종교차별·성차별을 유발 또는 반영하는 언행을 삼가자는 사회운동이다. 백인 보수층은 PC가 그들을 역차별한다는 반감을 갖고 있다. 그걸 간파한 트럼프는 지난 6월 “나는 PC를 거부한다”고 공개 선언해 보수층 백인들의 갈채를 받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백인표 결집 ‘대이변’
“미국 국익을 최우선 하겠다” 한·미 동맹 기로
정부, 트럼프 캠프와 대화채널 시급히 구축을

기독교원리주의자들과 공화당 내 우파세력 티파티의 지지를 받은 트럼프와 합리적인 자유주의자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은 미국을 좌우로 분열시켰다. 그 상흔은 앞으로의 미국 정치를 크게 성격 지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미국인의 통합과 재건을 강조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도 했다. 젭 부시의 조기 예선 탈락이 이미 워싱턴 엘리트 정치의 종말을 예고했었다. 선거 결과는 그 예고를 배신하지 않았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독일계 이민 3세인 트럼프가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와 백인우월주의, 극단적인 이슬람 배척을 현실 정책에 반영하려고 할 때 예상되는 기독교 대 이슬람의 종교전쟁과 동맹국들과의 방위비에 관한 갈등이다.

트럼프 고립주의 외교, 중·러는 큰 기대

세계가 받았을 충격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대외정책에서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십을 추구하겠다고 언급했다. 두고 볼 일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트럼프의 당선에 큰 기대를 걸었다. 트럼프는 중국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무역적자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중국이 환영하는 것은 트럼프의 동아시아 정책이다. 트럼프는 남·동중국해 갈등은 일본에 맡기자는 입장이고, 한국과 일본이 미군에 의한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중국은 미군 철수까지는 가지 않아도 적어도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약화될 것을 기대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에 트럼프와 덕담을 주고받아 미국·러시아 간 협력 관계의 강화를 예고했다. 푸틴은 트럼프를 총명한 재능이 넘치는 남자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푸틴과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과격한 이슬람 봉쇄를 외교·군사독트린의 중심에 두는 트럼프는 조지 W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비웃는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이슬람과의 종교전쟁을 암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표 외교정책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정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중동을 민주화시킬 수 있다고 착각한 결과 중동에 힘의 공백을 초래하고, 그 공백을 이슬람국가(IS)가 메우고 있다고 판단한다. 아마도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은 시리아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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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무식하고 저돌적이고 김정은같이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러나 직관력은 뛰어나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 한 차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4월 27일 워싱턴에서 한 단 한 번의 외교정책 연설에서는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스타일은 닮은 데가 있다. 그래서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미 관계에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중국을 움직여 김정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정은과의 정상회담도 할 용의가 있다는 말도 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트럼프의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책은 아직은 안갯속이다. 한·미 간에는 방위비 분담 문제로 갈등이 심각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진영이 짜여지는 대로 모든 채널을 동원해 트럼프의 부정을 긍정으로 돌리는 것이 트럼프 시대를 맞은 한국 외교의 지상명령이다. 지금 많은 한국인도 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를 연 분노의 혁명적 작용은 2017년 대선 때 한국에서 일어날 사태의 예시일 수도 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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