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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

IT로 생활 편리해져도 사람 향기는 희미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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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알베르토 몬디 이탈리아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알베르토 몬디
이탈리아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9년 전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치 미래 사회에 온 것 같았다. 교통카드 하나로 모든 교통수단은 물론 편의점 결제까지 할 수 있었다.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인터넷으로 피자집 메뉴를 확인하고 바로 주문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탈리아에선 그때는 물론 지금도 대중교통 차표는 매표소에서 구매해야 한다.

지난 9년 새 유럽도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사용률은 아직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낮다. 이젠 유럽에 갈 때마다 답답해질 정도로 한국의 IT 사회에 적응돼 적극적인 사용자가 돼 버렸다. 지난주 중국에 갈 일이 생겨 인천공항에서 자동 체크인 시스템을 이용해 봤다. 겨우 2분 만에 체크인을 마치고 탑승권을 받을 수 있었다. 출입국 검사장도 여권을 긁고 지문을 찍고는 바로 통과했다. 미리 자동 출입국 등록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캡슐 커피숍에 가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커피 캡슐로 혼자서 손쉽게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뽑아 즐겼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스마트폰으로 미리 예약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기술의 역할과 효과를 생각하다 갑자기 몇 가지 고민이 들었다. 업무 자동화로 생활이 편리해진 건 좋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단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아졌다. 이를테면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검색엔진의 알고리즘이 골라 준 맛집 정보만 볼 수 있다. 앱으로 여행 정보를 찾으면 아무런 도전정신이나 모험심 없이 남들이 이미 가 본 곳을 선호하게 된다. 실패의 위험은 줄지만 고르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자기 선택에 대한 기대감도 없어졌다. 운전도 그렇다. 예전엔 이탈리아나 서울에서 내비게이션 없이 다녔다. 길을 못 찾아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어딜 다녀오면 바로 길을 외울 수 있었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져 자주 가던 길도 혹시나 해서 이를 켜고 가게 된다. 바보가 된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과 접촉할 일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매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은 기계나 IT로 진행되는 게 효율적일 수 있지만 사회문제는 알고리즘이나 데이터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은 물리적으론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두 사람이 아닐까.

알베르토 몬디 [이탈리아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