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재의 시시각각

트럼프 시대의 김종인 총리

중앙일보

입력 2016.11.09 18:55

업데이트 2016.11.1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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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논설위원

이정재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의 미국은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까. 여기 힌트가 하나 있다. 보스턴 글로브가 지난 4월 실은 가상기사다. 2017년 4월 (불법) 이민자 추방이 시작되자 수천 명의 시위대가 백악관에 몰려들지만 대통령 트럼프는 눈도 깜짝 않는다. 중국과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각각 45%·35%까지 올리면서 무역전쟁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뉴욕 증시가 폭락했다. 중국과도 크게 틀어졌다. 트럼프가 자신의 중국산 애완견 이름을 중국 영부인 펑리위안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이 안 보일 땐
쾌도난마가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정치·경제·외교·안보 질서에 유례없는 ‘불확실성’이 생긴 것은 확실하다. 한국에도 직격탄이다.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미군 주둔 비용 급증 등 줄악재가 예고돼 있다. 코스피를 비롯해 아시아 증시는 어제 일제히 급락했다. 이런 대혼란의 시기에 한국의 국가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거국내각이든 책임총리든 총리 선임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미 식물이 된 대통령 탓만 하며 나몰라라 하는 것은 정치가 경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신임 총리는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될 수도 있다. 사실상 1년짜리 대통령이다. 차기 대선의 향배를 가르는 키맨이 된다. 그러니 야 3당이 ‘국면전환용’ ‘시간끌기’라며 거부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복잡한 수읽기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에서 친문(親文)·비문(非文), 국민의당이 갈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며 하마평이 난무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정파·정략만 따져선 안 된다. 부지하세월, 총리 하나 못 내세우고 해를 넘길 수 있다. 그땐 국회 무능론이 나오고 박 대통령이 살아날 것이다.

그럼 누가 적임자인가. 김병준 내정자는 아깝지만 흘러간 물이다. 개헌·사드 찬성·반대 같은 정파적 이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총리의 조건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여야에 빚이 없고 둘째, 국정 감각이 있으며 셋째, 배짱·소신·지략을 갖추고 넷째, 경제통이어야 한다. 꼭 맞는 인물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첫째, 김종인은 박근혜·문재인에게 동시에 팽(烹) 당한 드문 경력자다. 둘 중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이 그렇게 믿어줄 것이란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민심이 둘로 갈리지 않는다. 둘째, 국정 감각. 김종인은 청와대 경제수석을 했으며 정당을 다뤄본 경험도 있다. 문재인의 지리멸렬하던 민주당을 제1당으로 올려놨다. 박근혜에겐 경제민주화로 대통령의 자리를 안겨준 일등 공신이다. 능소능대다. 어느 쪽을 찔러야 민심을 얻을지 안다. 그건 시대를 읽는 눈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셋째, 소신과 배짱. 새 총리는 헌법적 지위를 무기 삼아 국정에 개입하려는 대통령에 맞설 수 있어야 하고 국회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도 버텨야 한다. 필요한 건 치세의 영웅이 아니라 난세의 효웅이다. 김종인은 타고난 반골기질로 버티는 힘이 강하다. 그는 책임총리론을 “헬렐레 총리”, 국회 추천 총리는 “야당에 책임을 떠넘긴 대통령의 기가 막힌 한 수”라고 꿰뚫었다. 그런 지모와 내공이 필요하다.

넷째, 경제통. 세계 경제는 대혼란,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한국 경제도 백척간두다. 우선 있는 것이라도 잘 지켜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 내 정권보다 나라 장래를 먼저 생각하는 경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좌우, 보수·진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와 성장 담론은 두 차례의 선거로 국민의 동의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물론 노회한 정치꾼의 눈으로 보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일 수 있다. 나는 김종인과 일면식도 없다. 그의 노선을 지지하지 않거니와 정서적으로 동조하지도 않는다. 외곬 경제 기자로서 내가 대한민국 정치에 지금 바라는 건 딱 하나뿐이다. 이 엄청난 혼란의 시대, 정치의 불확실성을 없애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그래서 나는 최순실과 트럼프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을 김종인이 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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