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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45대 대통령, 트럼프] 몰려오는 트럼프 태풍, 한·미동맹 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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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ㆍ미동맹에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2012년 발효된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안보와 경제의 두 축이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모두 조정 대상으로 향하게 됐다. 6ㆍ25전쟁을 통해 피로 맺어진 혈맹이라는 심리적 연대는 트럼프 정부에선 미국의 국익이라는 차가운 잣대에 따라 뒷전으로 밀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간 한ㆍ미동맹의 금기를 깨는 새로운 발상을 계속 던져 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인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선 “방위비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할 것(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위비분담금에 대해선 “한국은 돈을 빨아들이는 기계인데 우리가 받는 주둔 비용은 껌값”이라며 “왜 100%를 부담하면 안되는가”라고 반문했다. 한ㆍ미FTA를 놓곤 지난달 “힐러리 클린턴이 주도한 한국과의 무역협정 때문에 우리는 일자리 10만개를 빼앗겼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우리가 멍청하다고 비웃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역대 한ㆍ미 정부는 동맹의 공식에서 오차가 없었다.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고 한국은 미국의 대외 정책을 전면 지지하는 60여년의 관계다. 기갑ㆍ포병ㆍ공수ㆍ보병으로 완전 편제된 주한미군 2사단은 후방 지원이 아닌 실전 투입이 당장이라도 가능한 세계 최강의 전투 병력중 하나다. 오산에 있는 미 공군기지는 동북아 미군 공군의 허브중 하나이고 일본과 괌, 하와이의 미 공군ㆍ해군은 작전 범위에 한반도가 포함된 상시 대기 전력이다.

한국은 대신 박정희 정부때 베트남전에 참전해 5000명이 희생됐다. 한ㆍ미 관계가 삐걱거렸던 노무현 정부 때도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미국ㆍ영국에 이어 세번째 규모의 병력을 이라크에 보냈다. 한ㆍ미동맹의 유일한 안보 위기는 지미 카터 대통령이 박정희 정부의 인권 탄압을 문제삼아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했다가 철회했던 정도다. 양국의 동맹 관계는 2014년 국제 사회가 에볼라 퇴치에 나서야 한다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요청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서아프리카에 구호 인력을 보내는 등 군사 이외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에선 전통의 동맹 관계가 근본부터 흔들린다. 트럼프의 외교안보자문인 왈리드 파레스는 “한ㆍ미FTA 등 통상은 트럼프의 전문 분야로 트럼프가 집권하면 심각하게 협상할 분야”라며 “양국 정부간 수개월에 걸친 의견 교환이 이슈가 될 것”이라며 재협상을 예고했다.

트럼프 캠프의 정책통이자 새 정부의 통상 정책을 자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스티븐 밀러는 한ㆍ미FTA를 강경 비판해온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의 최측근 보좌관 출신이다. 역시 외교안보자문인 찰스 큐빅 전 해군 소장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우리가 위협에 대응해 책임을 공유할 뿐 아니라 비용도 공유하도록 어떻게 할지 살필 수 있다”며 방위비분담금 재협상을 알렸다.

트럼프의 불랙리스트에는 일본ㆍ독일(북대서양조약기구ㆍ나토) 등도 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중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할 수 있다”던 당초 발언에서 물러섰지만 큐빅 전 소장은 “자체 핵무장이건 전술핵 재배치건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가 있다”고도 밝혔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 허용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미국 조야의 일관된 반(反)핵확산 기류로 볼 때 성사되기 어려운 아이디어다. 그러나 만약 이 길로 가면 한국은 핵무장을 하는 대신 미국은 한국 방어에서 완전히 빠지겠다는 한ㆍ미 군사동맹의 해체나 다름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트럼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일본ㆍ독일 등과는 달리 한국은 대미 영향력이 제한된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미국 내에서 정치적 반발을 부를 수 있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나 일본 보다는 부담이 덜한 한국이 트럼프의 제값 받기의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붕괴되며 외교 안보의 지휘 라인이 무너진 상황에서 트럼프 폭풍이 닥치면 한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일각에선 그간 미국 대선이 끝나면 외교 관례처럼 진행됐던 당선인과 한국 대통령 간의 축하 전화 통화가 이번엔 이뤄질지조차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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