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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스타그램 #문단성폭행 #최순실…이슈 이끄는 해시태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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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그런데최순실은

지난달 7일 오전 페이스북에는 하나의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김제동이 거짓말은 했네 안했네가 이슈가 되면서 교문위에서 최순실·차은택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걸 결사거부한 사실은 묻히고 있으니” 해당 이슈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모든 포스팅 끝에 ‘#그런데최순실은?’을 붙이자는 제안이었다. 한 방송사 PD의 궁금증에서 시작됐지만 이는 이제 국민 모두의 궁금증이 되어 ‘#나와라최순실’ ‘#하야하라박근혜’ ‘#가자광화문으로’ 등 변형된 해시태그가 쏟아지고 있다. 해당 문구는 그대로 피켓과 현수막으로 옮겨져 도심 곳곳을 뒤덮기 시작했다.

#문화계_내_성폭력

지난달 중순부터 트위터를 달군 또 하나의 해시태그다. ‘#오타쿠_내_성폭력’을 당했다는 한 네티즌의 고백은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등 문화계 전반으로 번지면서 폭발력을 얻었다. 특히 문단에서는 박진성·배용제·이이체 시인 등 가해자를 실명으로 지목한 고백이 이어졌다. 이어 지난 3일 서울예대에는 황병승 시인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붙고, 송승언 시인이 해당 시인들의 시집을 출판한 문학과지성사에 “죄질이 악한 시인들을 제명시켜, 시인선의 빈 구멍들을 반성과 치욕의 사례로 두십시오”라고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오프라인 움직임도 거세다. 문학과지성사는 6일 문제시인들의 출판계약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해시태그는 게시물의 분류와 검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든 표시였다. 2007년 트위터에 도입돼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 영토를 넓혀온 해시태그가 ‘사회운동(activism)’을 만난 것은 2010년 ‘아랍의 봄’ 사태 때다. 튀니지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해 이집트·리비아 등으로 건너간 민주화 물결인 만큼 ‘튀니지(#Tunisia)’ ‘이집트(#Egypt)’ 같은 국가명이나 ‘시위(#protest)’ 같은 간단한 단어 형태로 사용됐다.

게시물 분류·검색 쉽게 하려는 표시
SNS 만나 ‘아랍의 봄’등 사회운동화
국내선 ‘먹방’ 관련 4500만건 최다
최순실 사건 계기 한국서도 폭발력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나 9월 미국 뉴욕 월가 시위 때부터는 ‘일본을 위해 기도합니다(#PrayForJapan)’ ‘월가를 점령하라(#OccupyWallstreet)’ 등 문장형 해시태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메시지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압축적으로 전달하면서 대형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달하는 방법이자, 사회적 움직임을 제안하는 구호라는 새로운 쓰임새가 생겨난 셈이다. 이후 지난해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 테러 때 등장한 ‘나는 샤를리다(#JesuisCharlie)’ 등 세계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맞는 해시태그가 나오게 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해시태그는 ‘퍼거슨(#Ferguson)’이다. 2014년 8월 9일 미국 미주리의 소도시 퍼거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살해된 뒤 무려 2720만 번이나 타임라인에 등장했다. 2013년 7월 10대 흑인 청년 트레이번 마틴을 살해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지머먼이 무죄 평결을 받으면서 시작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LivesMatter)’는 아예 상시적인 캠페인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내리자 이를 자축하기 위한 ‘사랑이 이긴다(#LoveWins)’처럼 인종·성 차별 같은 이슈를 만날 때마다 그 힘은 더욱 커져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이렇다할 해시태그 운동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먹스타그램’ ‘#럽스타그램’ ‘#애스타그램’ 등 먹방·연애·육아 등 특정 주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8일 현재 인스타그램 내 ‘#먹스타그램’이 붙은 게시물은 3576만, ‘#먹방’이 붙은 게시물은 1043만 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사회적인 해시태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그동안 자신의 일상이나 의견을 밝히는데 주로 사용하던 SNS를 단지 개인적 발언 차원을 넘어 서구사회처럼 동의나 지지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특히 믿었는데 속았다는 배신감을 기본 동력으로 하는 한국형 소비자 민주주의와 만나 폭발력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SNS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 언론도 취재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종의 의제 설정 기능이 존재한다”며 대안·유사언론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 일방적 폭로나 손쉬운 참여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생산적 논의와 해결 방안 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해시태그가 성폭력 고발 사태에서 불거져나온 문제들을 아카이빙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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