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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대통령에게 마키아벨리를 권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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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비상한 시국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에게 비상한 독서를 권하고 싶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정략론』이다. 박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담화를 보며 느낀 건 그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어제 국회에 총리 추천을 요청하는 등 일보 진전은 있었지만 여전히 권력에 대한 미련의 자락을 남겨둔 듯해 의심을 산다. 지금 정국을 풀 열쇠는 대통령의 진정한 반성과 마음 비우기다. 이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도울 만한 책을 골라봤다. 박 대통령은 마키아벨리적 기만술에 대해선 잘 아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 책이 적당하다 싶었다. 이런 대목에 유의해 읽으면 현 시국 판단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 사과에 진정성 느껴지지 않아
무엇이 잘못인지 성찰의 시간 가져야

-원한은 악행뿐 아니라 선행에서도 생긴다. 선의로 한 일도 결과가 악을 낳으면 누구나 원수가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이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며 기업인들의 모금도 선의”라고 했다. 한데 두 재단 문제가 불거지자 기업들은 ‘갈취당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이 돈은 최순실의 쌈짓돈이 됐다.

-지도자로서 가장 큰 악덕은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국정지지율 5%. 국민들은 두 차례의 사과에도 ‘하야’를 외치며 시민혁명 전야를 향해 달린다. 지난주 토요일 촛불집회의 질서정연함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정권과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경멸’이었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 앞에서 편 갈라 싸우는 여당, 대안은 못 내고 간만 보는 야당, 기회를 틈타 선동하려는 좌우진영에게 국민들은 “우리는 당신들과 다르다”고 처절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키케로가 말했듯 민중은 무지하더라도 진실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다.

-민중이 특정인에게 불만이나 노여움을 품는 경우 필요한 것은 법적으로 정당한 배출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의 분노는 대통령과 최순실을 향하고 있다. 대통령이 권력의 끝자락이라도 잡으려 한다면 배출구 없는 민심은 어디로 폭발할지 모른다.

-성난 민중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존경받는 출중한 인물이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통령이 내밀었던 김병준 총리내정자 카드는 최악의 패착이었다. 그가 총리 지명 후 연 첫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인 데 대해 대학생들은 그를 ‘병즙(汁)’이라고 불렀다. 그는 경멸의 닉네임으로 불리는 순간 이미 지도자로서 설 땅을 잃었다. 절차를 무시한 대가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도 국민이 동의하지 못하고 의구심을 일으키는 인물을 추천한다면 역풍을 맞을 거다.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서툴러 점점 더 남이 참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잘못 사용해 국민에게 끼친 폐단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부패한 공화정에서 탁월한 인물은 질투 등으로 적대시되고, 사람들은 기만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자들이 추천한 누군가를 추종한다-

우리 국민들도 왜 박근혜를 선택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의 미덥잖은 지적 능력과 최태민에게 얽힌 과거는 알았거나 최소한 눈치는 챘다. 그럼에도 향수와 같은 비합리적 정서와 정치꾼들의 선동에 눈감은 건 아닌지. 비합리적 판단과 대중 인기에 영합해 부적절한 지도자를 선택한 국민도 이 불행한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도자 없는 군중은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와 다름없다-

국민들은 이제 모리배 선동가들이 나대지 못하도록 냉정해져야 한다. 그게 야심가를 지도자로 바꾸는 길일 수 있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