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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 분노의 기원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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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현재 정국을 무엇이라 부르건 매우 급박한 비상상황인 것은 틀림없다. 또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책임총리건 거국내각이건 대통령 사임이건, 그 어느 것도 얽혀 있는 정국의 실타래를 풀 합의의 가능성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돌아가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난 토요일 광장을 메웠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되짚어보는 일일 것이다.

설득?납득시키는 것이 공공성
대통령은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해
공공성 붕괴…이것이 나라인가?
개성공단 폐쇄, 사드 전격 배치
교과서 국정화 국민·동맹국 의문
이러고도 ‘조금만 참으라’ 못해

사실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비선’의 존재는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부에서 저질러졌던 ‘단순한’ 비리들과는 달리 지난 토요일 광화문을 뒤덮은 20만의 군중을 들끓어오르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고 메시지는 무엇이었던가? 이러한 분노의 근원적 원인을 살피지 못한다면 결국 정국의 해법 또한 찾지 못할 것이다.

 첫째,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질문은 정부 공공성의 붕괴를 지적하는 말이다. 정부 공공성이 이전 정부에서 훼손된 적은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대통령이나 친인척들이 ‘공사 구분’에 실패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 특히 대통령은 이러한 공공성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모든 정치공동체는 피할 수 없는 잠재적 갈등 위에 존재한다. 정치라는 것은 이러한 갈등들을 발견하고 예방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며, 정책적 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승자와 패자를 낳기 마련이다. 정부의 결정이 패배자를 설득하는 권위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보다 큰 대의, 즉 공동체의 공공선에 입각한 것이라고 납득시킬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공성은 대통령이 가족과 연을 끊고 본인의 사적 영역을 삭제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순수한 마음’이나 ‘구국의 신념’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는 더욱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고 공개된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치며 철저하게 그 기록을 남길 때 가능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런 가장 단순한 공공성의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했다.

둘째, 샤머니즘과 사교(邪敎)의 소문이 떠도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관장하는 여러 전문 영역들이 극단적 비전문성과 개인적 이해에 의해 지배받았다는 정황 때문이다. 더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적어도 문화·체육 분야가 좀먹듯이 약탈당한 것이 드러났으며 나아가 통일·외교 정책 결정 중 상당수가 해당 부처의 의견이나 일정과 무관하게 전격적으로 청와대에서 내려와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모든 행정부에는 정치에 좌우되지 않는 전문 관료들과, 대통령을 따라온 정무직들의 상시적 대립이 있을 것이며, 과거 어느 정부이건 선거캠프가 장·차관직과 청와대 비서진을 채우고 정무적 판단으로 국정을 좌우한 사례는 흔하다. 그러나 어떤 과거의 정부도 통치의 모든 영역에서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을 정당화하는 데 이토록 실패한 적은 없었다.

현 사태의 핵심은 이미 밝혀진 부분이 아니라 앞으로 밝혀질 부분의 심각성에 있으며, 개성공단 전격 폐쇄와 사드 전격 배치, 그리고 교과서의 전격적 국정화에 이르기까지 정부 정책 전 영역에 걸친 의사결정에 전 국민과 동맹국들이 의문부호를 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검찰이나 특검이 범법을 입증해야 하는 법적 과정과는 달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무죄를 전 국민과 세계에 입증하고 정책적 정당화를 꾀해야 할 책무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분노의 또 다른 근원은 공정성의 원칙이 체계적으로 유린되었다는 데 있다. 입시와 병역 비리처럼 시민들의 생활 인근 영역에서부터 수백억원에 이르는 재벌들의 모금액까지 시민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부조리와 약탈의 윤곽은 저 수면 아래에서 대한민국호라는 배를 그림자처럼 일렁이며 끌어내리고 있다.

공정성의 원칙이란 것은 공동체 시민 누구나가 동일한 원칙의 적용을 받고, 동일한 사회적 책무를 지며 같은 양의 고통과 눈물을 분담하는 원칙일 수밖에 없다. 입시는 어렵고 군역(軍役)은 고통스러우며 한 가정의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 누가 스크린도어의 틈새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과 유리지갑의 화이트칼라들에게 국가경쟁력과 성장동력이라는 구호 아래 ‘조금만 참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공공성의 붕괴, 전문성의 상실, 공정성의 유린이라는 이 모든 분노의 기원을 찾아가는 일은 단순히 민주화 이후 30년이 이룩한 정치발전이 악몽 같은 허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다. 뜨거운 열정이 아닌 차가운 분노, 그 기원을 함께 찾아가고 바로잡는 일은 그 결론의 끝에 우리가 앞으로 살아나갈 미래 공동체의 밑그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