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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찰, 왜 정당성 잃은 대통령 눈치를 보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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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밝혔지만 과연 진상 규명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간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 보기에 바빴던 검찰이 이번엔 얼마나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말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보면 ‘뒷북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 9월 29일 최씨 사건 고발이 접수되자 해당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했다. 지난달 20일 박 대통령이 재단 자금유용 등에 대한 엄벌 의지를 밝힌 뒤 검사 2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같은 달 25일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직후엔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수사팀을 몇 번씩이나 확대한 것이다. 대통령의 언급이 나올 때마다 마지못해 한발씩 나아갔다. 결과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진술을 짜맞출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셈이다.

특히 최씨와 안종범 전 수석에게 제3자 뇌물 혐의가 아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열어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최씨 입국 즉시 신병 확보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최씨가 31시간 동안 은행 창구에서 거액을 인출하고 변호인 등과 수사 대응 방안을 논의할 시간을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CJ그룹을 상대로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 등을 압박한 녹취록까지 나왔는데 검찰은 조사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대통령과 직결된 중대한 범죄 혐의인 만큼 조 전 수석을 즉각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손을 놓고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의혹과 직접 관련된 인사들을 최대한 빨리 구속시키는 데만 주력하는 인상이다. 국기를 뒤흔든 국정 농단 사건을 단순한 측근 비리 정도로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씨가 검찰에서 먹은 곰탕은 외부로 보내는 신호”라거나 “최씨가 대역(代役)으로 바꿔치기 됐다”는 음모론이 퍼진 것은 시민들의 검찰 불신이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검찰도 특검 수사의 대상”이란 지적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지 검찰 조직은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만약 검찰이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뒤따라 가는 행태를 지금처럼 반복한다면 결국 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