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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맘에 안 드는 총수 찍어내며 ‘경제 살리기’ 외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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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정부의 압력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는 보도에 대해 “90% 맞다”고 시인했다. “사퇴에 앞서 주무 장관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도 했다.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재단에 10억원만 내고 K스포츠재단에는 기부를 거부해 정권 실세의 눈 밖에 나 해임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일각에선 ‘최씨가 관련된 회사에 올림픽 시설 관련 일감을 주라는 요구에 조 회장이 반대한 것도 사퇴 압력의 이유가 됐다’고 지적한다. 공교롭게도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해운은 이후 채권단의 지원이 끊기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도 정부의 압박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3년 말 청와대 경제수석과 CJ 고위 관계자 사이의 전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 수석은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난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른다”며 이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 이 부회장은 10개월 뒤 요양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며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재계에선 "CJ가 투자한 영화 ‘광해’와 케이블 채널 tvN의 정치풍자 프로그램이 현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어이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마음대로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군사정권이나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행태다. 틈만 나면 ‘경제 살리기’를 위해 합심해 달라고 호소해 온 게 박근혜 정부다. 하지만 뒤에선 내 편, 네 편을 나누고 맘에 들지 않는 총수의 거취까지 종용하며 기업 흔들기를 해 왔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7대 그룹 총수를 독대한 게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위해서가 아니었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기업 갈취와 정경유착은 국가 경제를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비정상의 극치이기도 하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기업의 반성이 필요하다. 땅에 떨어진 경제 리더십을 복구하기 위한 여야의 초당적 대처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