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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미운털 박힌 이유, 박근혜 희화화한 SNL 때문이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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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말 청와대 핵심수석이 VIP(대통령)의 뜻이라며 CJ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보도와 관련, 그간 항간에 떠돌던 'CJ가 현 정권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CJ 미운털' 소문의 근원지는 이미경 부회장이 지휘봉을 잡았던 문화콘텐츠 분야였다.

지금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SNL코리아'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나치게 희화화하고, '광해, 왕이 된 남자' 같은 '좌파' 영화가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게 소문의 요지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SNL코리아'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정희 등 대선 후보군에 오른 정치인들을 패러디해 본격 정치풍자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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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천의 얼굴'로 불리는 개그맨 정성호가 박근혜 후보 역을 맡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헤어스타일과 의상, 표정은 물론 말투와 웃음, 습관까지 똑같이 재연해냈다. 천연덕스럽고 능청맞은 표정과 말투로 '집요한' 권력욕을 표현해내는 연기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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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코리아에서 박근혜 후보를 패러디한 개그맨 정성호

2012년 6월 방영분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로 분한 정성호는 대선에 나서려는 이유에 대해 "어릴 적 20년 살았던 청와대가 고향같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냐"고 말하고,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이재오 의원에게 "저는 착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웃으며 받아치는 등 폭소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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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너에서는 '용상'(龍床· 왕의 자리)을 보고 "저 자리가 내 자리인데"라며 욕심을 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SNL코리아는 유명 팝가수 비욘세의 히트곡 '싱글 레이디'를 개사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패러디한 '박그네송'을 선보이기도 했다.

개그우먼 강유미와 안영미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분장, 코믹 섹시 댄스를 추며 "여자가 뭐? 싱글이 뭐? 제발 좀 그만해" "나는 못 말리는 수첩공주 박그네, 자꾸 안철수랑 비교하니 피곤해" 등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심경을 빗댄 가사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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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코리아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심경을 빗댄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개그우먼 강유미(왼쪽)와 안영미

SNL코리아의 인기코너 '여의도 텔레토비 리턴즈'에서는 개그우먼 김슬기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패러디한 캐릭터 '또'를 연기했는데,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후보로 등장하는 출연자가 (다른 정치인 캐릭터에 비해) 욕을 많이 한다"(홍지만 새누리당 의원)는 지적을 받아 파문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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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코리아의 인기코너 `여의도 텔레토비 리턴즈`의 `또` 캐릭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를 패러디했다.

CJ가 기획·투자·배급을 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9월 대선정국에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는데, 이 또한 박근혜 캠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민적이고,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펼치려 한 주인공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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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때문에 당시 보수층에서는 영화가 친노 인사인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2013년 7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횡령·배임·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이미경 부회장은 2014년 9월 유전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부회장은 계속 미국에 머물고 있다.

이재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직후 CJ는 'SNL코리아'의 정치시사 풍자 코너를 모두 폐지했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응원한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영화 콘텐츠도 달라졌다.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를 잇따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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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서울 상암동에 있는 CJ E&M센터 1층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만들어 창조경제 관련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CJ가 너무 노골적으로 정권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이재현 회장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됐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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