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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최순실을 모릅니다” 거짓말은 아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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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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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JTBC 정치부 기자

지난 몇 주간 계속 몸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진 환절기의 통과의례인가 싶었다. 하지만 뭘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자고 일어나도 피곤했다. 주변에도 아픈 사람이 많았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게 나랑 비슷했다. 뚜렷한 이유가 없고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다. 같이 얘기를 나누다 “이게 다 최순실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말에 힘없이 집에 늘어져 있는데 조카가 읽다 만 동화책이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은 아파요』란 책인데 친구 로봇을 부러뜨리고 그 사실을 감춰 오던 주인공이 결국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거짓말을 더 이상 이어 갈 수 없었던 이유는 이거였다. “가슴이 따끔따끔해요.”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비슷했다. 국회에서 국감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무한 반복되던 질문이 떠올랐다. “정말 (최순실을)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한번 본 적도 없다는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사람들을 비난했다. 장관들과 청와대 사람들은 그들대로 항변했다. “나도 최순실 아니라 최순실 측근이라도 한번 만나봤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나는 모르지 않았다. 기자로 일한 지 6년, 비슷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경찰서에선 “사기꾼한테 이번에 퇴직한 전관이 변호사로 붙었다나 봐. 검사가 혐의 없음 처분해 버리네”라는 형사 말을 흘려들었다. 정부 부처를 출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VIP가 미는 사업이잖아. 이거 못하면 장관 내놔야 하지 않겠어”라는 공무원의 말을 웃어넘겼다. 나도 구태여 무슨 일이냐 따져 묻지 않았다. 취재기자와 취재원은 모두 침묵했다.

은행원 친구에게 나도 수없이 많은 ‘최순실’을 만났다는 걸 털어놨다. 어쩌면 내가 ‘최순실’일 수도 있다는 말도 보탰다. “우리 지점에도 최순실이 있어.” 본부장의 ‘코드’를 유난히 잘 맞추는 여자 부장이 실세고, 그 부장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실적과 고객을 넘겨주는 일들도 있다고 했다.

오래된 조사이지만 우리나라 회사원 10명 중 8명 이상이 “회사 내 실세가 있다”고, 업무보다는 임원과의 관계가 밀접해야 실세”(인크루트, 2010년)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최순실’을 알면서 모른 척하며 비난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은 아프다니 그래서 다들 그렇게 아팠나 보다.

법륜 스님은 “대학생들의 사회 비판이 사라지고 사회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 대학생들을 다 깨운 사람이 최순실”이라고 했다. 함께 점심을 한 국회의원도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땐 인물뿐 아니라 측근들도 함께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거짓말하면 아프다. 하지만 된통 아프고 나면 건강해진다는 말도 소중히 기억할 때다.

김혜미 JTBC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