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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지자들의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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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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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정치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야권 누구와 붙여도 35%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취임 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이 불거졌지만 콘크리트 지지율은 끄떡없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에 ‘정치인 박근혜’의 여정을 떠받쳐 온 기둥이 무너졌다. 그 기둥은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故) 육영수 여사를 기억하는 이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은 ‘박근혜 절대 지지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추위가 닥친 지난 1일, 플래카드 하나 걸리지 않은 기념관은 한산했다. 방명록엔 ‘힘들었던 우리 세대에게 희망을 주셨던 뜻을 되새기고 갑니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를 그리는 이들은 여전한 것이다. 공을 강조하고 과는 감춘 전시관 내부를 등산복 차림의 60~70대 남성들이 둘러보고 있었다. “미르인가로 800억을 모았다는데 기념관이나 더 잘 만들 일이지….” 일행 중 한 명이 중얼거리자 뒤따르던 이가 소리쳤다. “즈그 아버지 망신이나 시키고….”

날이 풀린 3일, 기념관 앞엔 관광버스 한 대가 섰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에서 오전 7시 출발해 도착한 이들이다. 전시관을 돌고 나온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최순실에 대해선 욕설까지 써 가며 분노했다. 70대 여성은 “자기 가족들 먹고살 만하면 됐지, 해외에까지 뭐를 만들어 잇속을 챙긴 나쁜 X은 꼭 처벌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등에게 휘둘렸다는 뉘앙스였다. 대통령 하야 주장은 이들의 근심거리였다. 70대 남성은 “야당도 보듬어 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면서도 “이러다 4·19 혁명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적 라인과만 소통한 행태를 지적하는 이가 많았다. 구미에서 온 60대 여성은 “박 대통령은 최순실이 뭐하는지 어느 정도 알았을 것 아니냐. 진작 끊어내지 못한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공직 은퇴자 모임에서 기념관을 찾았다는 70대 남성은 “이제부턴 상하 관계에 있는 공직자들과 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동력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다수였다. “워낙 먹고살기 힘들어 임기 중 잘한 것을 꼽긴 어렵다”거나 “김병준 총리 인사를 혼자 발표한 건 잘못이다. 이왕 거국 내각을 한다고 했으니 내치는 완전히 넘겨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시된 수많은 사진 중 박 대통령이 담긴 건 10장 정도에 불과했다. 육 여사 생전 단란했던 가족사진이 대부분이다. 박지만씨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는 사진들 속에서 어린 박근혜는 행복해 보였다. 육 여사와 함께 찍힌 장면에서 박 대통령은 유달리 어머니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를 거쳐 대통령이 된 딸에게 아버지의 지지자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임기를 무사히 마쳐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김성탁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