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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광옥, 대통령 아닌 ‘국민의 비서실장’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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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3일 공석 중인 비서실장에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임명했다. 한 신임 비서실장의 어깨는 무겁다. 대통령 본인이 연루된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청와대가 작동 불능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됐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주당 대표를 지낸 한 실장은 DJP(김대중·김종필) 단일화와 노사정 대타협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호남 출신으로 야권과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는 합리적 인사란 점에선 적절한 인선이다. 그러나 야당은 한 실장 개인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국정 농단 의혹에 침묵하면서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한 박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을 문제 삼고 있다. 이는 국민 여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 실장은 박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국민 앞에 진상을 밝히고,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선언하게끔 해야 한다. 이것이 비서실장으로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게다가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고 책임총리가 국정을 책임질 전망인 만큼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총리와 대통령 간 메신저로 청(靑)·정(政) 간 조화를 끌어내고, 여야의 극한 대립을 해소할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한 실장이 매일 대통령과 야당을 만나 진심 어린 소통을 해야 할 이유다. 정당성도 도덕성도 상실한 청와대가 야당의 협조마저 얻지 못하면 그날로 대한민국은 멈춰 선다. 자리를 걸고 협치를 실현시켜야 할 책무가 한 실장에게 달려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고 ‘하야’ 목소리가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한 실장은 이런 폭발 직전의 분노한 민심을 대통령이 직시하도록 쓴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온몸을 던져 대통령의 고질병인 불통·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임 실장들은 이런 임무를 방기하고 대통령 들러리나 선 끝에 비선 실세들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한 실장마저 그런 전철을 밟으면 나라가 결딴난다.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은 국민의 비서실장이다. 대통령 눈치나 보는 ‘허수아비 비서실장’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