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통령 하야 시위 부른 남아공판 '최순실' 사건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지구 반대편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대통령 하야 주장이 나온다.

2일 수도인 프리토리아에선 제이컵 주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열렸다. 야당은 물론이고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일부 인사들도 동참했다. 남아공판 ‘최순실 의혹’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좌지우지했던 비선 실세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인 굽타 일가다. 이날 공개된 355쪽의 술리 마돈셀라 전 국민권익보호원장의 보고서(『포획된 상태』)에 따르면 굽타 일가는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차기 재무부 장관 후보자인 음케비스 조나스 재정부 차관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6억 랜드(500억원)를 줄테니 차기 재무 장관이 되어달라고 했다. 그리곤 주요 국고 관련 정책담당자들을 교체해달라고 요구했다. 그간 굽타 일가의 사업을 ‘훼방’놓던 인사들이었다. 조나스 차관이 거부하자 굽타 일가는 돈을 더주겠다고 했다. “만일 가방을 들 수만 있다면 당장 60만 랜드를 현찰로 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데이비드 반 루옌 재무 장관이 임명 4일 만에 돌연 해고되는 일이 벌어졌다.

모세벤지 즈와네 광업장관이 굽타 일가가 소유한 광산업체인 ‘테게타’의 광산 매입을 지원했다. 국영발전기업인 에스콤이 테게타에 특혜 수주를 준 정확도 포착됐다.

주마 대통령과 굽타 일가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주마 대통령의 아들이 테게타에서 일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남아공에선 이들의 유착을 ‘줍타’로 불렸다.

보고서는 주마 대통령이 범법 사실까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심할 만한 정황을 담았다. 또 정부에 독립된 특별조사위를 구성해 석달 간 의혹을 조사하라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는 당초 마돈셀라 전 원장이 물러나는 10월 중순 공개될 예정이었다. 주마 대통령이 이를 막으면서 법정 다툼이 벌어졌고 이날 재판부가 공개 결정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야당은 “범죄성이 있으면 주마 대통령도 형사 소추될 것”이라며 “당장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의회에서 절차를 밟아 쫓아내겠다”고 다짐했다. ANC의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설립한 넬슨 만델라 재단도 “개인적 이익을 추구해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다‘며 주마를 비판했다.

주마 대통령은 2009년 집권한 이래 크고 작은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되곤 했다. 사저를 국고를 들여 수리했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외신들은 “추락하는 경제 상황과 맞물려 이번 건은 심각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