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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질환보다 더 두려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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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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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신형두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요즘 술과 담배의 해악을 새삼 깨달았다. 그가 설립한 에스엔피제네틱스가 7일까지 500여 명을 대상으로 무료 유전자 체질분석을 해주고 있는데 40~50대 남녀에게서 제법 차이가 났다. 과음·흡연을 삼가는 여성의 경우 유전자 검사와 일반 건강검진 결과가 비슷한 것에 비해 많은 남성은 혈압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 유전자가 없더라도 술독에 빠질 경우 이를 버텨낼 장사가 없는 셈이다.

최근 개인 유전자 검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말부터 의사를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유전형질을 알아보는 시대가 열렸다. 방법도 간단하다. 입안 세포를 조사기관에 보내면 된다. 15만원 안팎에 혈당·피부노화·탈모·비만 등 12개 항목에 대한 위험성을 예측할 수 있다. 주로 실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5~6개 업체가 서비스 중이다. 암 등 중증질환은 법적으로 금지된 상태다. 잘못된 분석에 대한 우려에서다.

본인의 유전정보를 미리 알면 유용하다. 혹시 닥쳐올 질환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반면 과학자들은 유전자 결정론을 경계한다. 환경이란 변수 때문이다. 예컨대 일란성 쌍둥이도 성장 과정에 따라 발육에 차이가 난다. 비만 또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중요하다. 소득·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과체중으로 고생할 확률이 크다는 연구는 이제 낯설지 않다. 환경적 요인도 후세에 전해진다는 후성(후생)유전학도 요즘 떠오르고 있다.

한국인의 술·담배 소비에 경고등이 켜졌다. 통계청의 올 상반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주류·담배 평균 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7.1% 늘었다. 소득 대비 다른 항목은 대부분 줄어들었는데 말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 조사도 비슷하다. 24개국 가운데 한국인의 술 열량 섭취량은 하루 평균 168㎉로 ‘술 비만도’ 1위를 기록했다. 영광스럽지 않은 수치다. 술과 담배의 사회적 유전이 걱정될 지경이다.

가뜩이나 답답한 시절에 ‘박근혜 대통령 국기 문란’이 들이닥쳤다. 충격에 충격, 실망에 실망, 밑도 끝도 없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최순실 파일’이 드러난 지도 열흘이 넘어간다. 무력한 마음에 술과 담배를 찾게 된다. 세월호에 놀란 가슴, 이번에는 그로기 상태다. ‘나라 같지 않는 나라’에 화병(火病)만 깊어간다. 혹시라도 한국인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는 건 아닌지 두렵다. 최씨 일파가 챙긴 돈으로 국민 심리치료를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