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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경제의 쪽박마저 깨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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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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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경제가 진짜 어렵다. 20년 전 외환위기 뺨친다. 생산·소비·투자는 일제히 마이너스다. 자유 낙하에 들어선 수출 추락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주식시장은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기대했던 구조조정은 물 건너갔다. 공무원들은 다시 못된 버릇을 꺼내들었다. 미루고 덮고 떠넘기는 중이다.

안팎에서 쓰나미 오는데
깜짝 인사쇼가 웬 말인가

더 큰 위기도 예고돼 있다. 당장 미국 대선이 코앞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수도 있다. 충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트럼프 스스로 브렉시트의 5배 넘는 충격을 호언했다. 우리 경제가 받는 타격은 훨씬 클 것이다. 12월엔 미뤘던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 경제는 3분기 2.9% 깜짝 성장했다. 금리 인상 폭이 커질 수 있다. 경제학자와 월가의 금융꾼들은 벌써 디플레이션의 종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금리 시대는 끝났다. 달러의 재림이 시작됐다’며.

최악은 트럼프 당선과 미 금리 인상이 겹칠 때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한국 경제엔 초대형 충격이 올 수 있다. 가뜩이나 허약한 증시가 직격탄을 맞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곪을 대로 곪은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질 수도 있다. 어떻게 대처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다. 누군가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하고 있나. 초특급 위기가 몰려오는데, 뻔히 보면서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에 빠져 두 손 놓고 허우적대고 있다.

태풍은 경제 쪽으로 불어오지만 위기의 중심은 정치다. 정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경제를 구할 수 있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니 30·40대부터 소비를 줄이고, 잘못 돈을 넣었다 망할까 봐 기업은 투자를 꺼린다. 그런 점에서 어제의 전격 개각은 경제엔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 되레 불확실성만 키워 마지막 남은 반전의 기회마저 놓칠 수 있어서다. 왜 그런가. 첫째 앞뒤가 바뀌었고 둘째 시기가 안 좋으며 셋째 인물도 부적절하다.

당장 야당은 “불통 개각”이라며 발끈했다. 야당이 요구한 ‘선(先)사과 후(後)협의’가 통째로 무시됐으니 그럴 만하다. “나부터 조사받겠다”는 대통령의 진솔한 반성 없이 ‘깜짝 인사’로 돌파하기엔 국면이 너무 무겁다. 총리 인준부터 통과가 불투명하다. 금융가에서조차 “대통령이 장고 끝에 무리수를 뒀다”고 말하고 있다. 행마(行馬)의 수순이 바뀌면 묘수도 악수가 된다.

시기도 성급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한창 달아오르는 중이다. 국민적 분노가 분출할 시간을 줘야 했다. 달궈지기도 전에 쇠를 때리면 손만 다친다. 그러니 국면 전환용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인선의 메시지도 도발적이다. 김병준 총리 내정은 친노세력에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내치자니 어제의 동지요, 노무현의 부정이다. 받자니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이런 선택지를 민주당이 받아들일 리 없다. 아예 판을 깨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도 친노도 다 싫다는데 그중 하나를 고르라는 게 웬 말인가. 그러니 안철수 전 대표가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 아닌가.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 역시 김 내정자와 비슷한 딜레마다. 정통 관료로 구조조정의 적임자로 평가받지만 현 정부의 금융위원장이란 한계가 분명하다. 야당 입장에선 받자니 대통령의 통치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게다가 임 내정자가 한진해운에만 지나칠 정도로 원칙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 최순실과 관계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경제 위기는 질병과 같아서 때를 놓치면 치유할 수 없다. 아직 기회는 있다. 김대중 정부 때의 DJP 내각 같은 ‘경제 분권형’ 협치도 고려할 만하다. 그러려면 결자해지, 대통령이 먼저 다 내려놔야 한다. 어제 개각에 대해 시장은 이렇게 반응했다. 원화 가치는 급락했고 주가는 속절없이 2000선이 무너졌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한국 경제의 정책 동력 상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무디스는 “국가 신용등급 하향”을 경고했다. 못난 정치가 한국 경제의 쪽박마저 깨 먹고 있는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